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달 24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사법부 수장이었던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된 40여개의 혐의로 구속됐다.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되는 주요 범죄혐의는 직권남용죄이다. 온라인에서 '직권남용'을 검색하면 다수의 기사가 확인될 정도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 '직권남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지사의 직권남용에 대한 재판', '전 검찰국장의 직권남용에 대한 재판',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직권남용에 대한 수사', '국회의원의 재판 민원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 검토', '부동산 투기와 관련된 국회의원의 직권남용 의혹' 등 다수의 직권남용에 대한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직권남용은 새롭게 나타난 사회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직권남용은 과거에도 발생했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문제이다. 공무원이 직무를 핑계로 자기 권한 밖의 행위를 함부로 하여 공정성을 잃어버림으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과거부터 있어온 비리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직권남용행위를 행한 공무원이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공무원의 직권남용이 사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거나 공법상 징계사유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형법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충적 수단으로서 다양한 불법행위 중 형사처벌이 필요한 행위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직권남용행위가 형법상 직권남용죄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하여도 재판에 의해 최종적으로 유죄로 확정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의혹이 제기된 모든 공무원의 직권남용행위에 대해 형법상의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다.

이러한 형법의 원칙들을 이해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직권남용행위의 발생빈도에 비해서 실제로 직권남용죄로 처벌받는 사례가 극히 미비하다는 것은 사법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형법 제123조는 직권남용죄를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란 법령에 의해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최근 직권남용의 의혹을 받고 있는 대통령,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 문체부장관, 대법원장, 도지사 등은 모두 공무원에 해당한다.

'직무권한'은 일반적 직무권한을 의미하며, 반드시 법률상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것을 요하지는 않는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형식적, 외형적으로 직무집행으로 보일지라도 그 실질이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형식·외형상 적법한 직권행사일지라도 공무원 개인의 실질적인 목적을 위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따라서 직권남용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직권의 범위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전제돼야 한다.

재판 개입과 관련하여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광범위한 직무권한이 있기 때문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성립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을 수도 있다. 검찰도 국가공무원법을 토대로 "법관은 사법행정권자의 직무감독권에 따른 정당한 직무상 명령에 대해 복종해야 할 의무가 존재한다"고 보고, 대법원장에 대한 직권남용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 대해 현직 부장판사는 "헌법과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 이외에는 인사권을 가진 법관을 비롯한 누구도 해당 사건의 심판에 관여할 권한 자체가 없다"며 "대법원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청탁을 해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것이므로 이를 따를 의무 자체가 없다"고 밝히고, 전 대법원장이 설사 재판에 대해 부당한 지시를 하였더라도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글을 게시했다. 이와 같이 형법상 직권남용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법리 전개가 불가피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범죄성립을 증명하기 위한 법리 전개가 권력의 논리에 의해서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직권남용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철저한 수사 및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법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수사와 재판에 의해 범죄혐의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는 사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