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 1. 연암 박지원 - (3) "기와조각과 똥거름, 이거야말로 장관일세!"
[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 1. 연암 박지원 - (3) "기와조각과 똥거름, 이거야말로 장관일세!"
  • 여승철
  • 승인 2019.0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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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더럽다며 '싸기'만 할텐가
그 똥을 치워 '거름'을 만들텐가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 '벼타작' 김홍도 그림. 바쁜 농사철이지만 양반은 돗자리 깔고 누워 장죽만 빨아댄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벼타작' 김홍도 그림. 바쁜 농사철이지만 양반은 돗자리 깔고 누워 장죽만 빨아댄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와조각과 똥거름, 이거야말로 장관일세!" 연암 선생이 <열하일기>의 '일신수필(馹迅隨筆)'에서 한 말이다.

똥이란 지극히 더러운 것이지만 밭에 거름을 준다면 마치 금처럼 아까워한다. 길에 버린 재가 없고 말똥을 줍는 자는 삼태기를 메고서 말 뒤를 따라 다닌다. 이 똥과 재를 모아 네모나게 쌓거나 혹은 팔각으로 혹은 여섯 모로, 혹은 누대의 모형처럼 만든다. 똥거름을 보니 천하의 제도가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한다. "기와조각과 똥거름 이거야말로 장관이다!"


연암은 '똥이란 지극히 더러운 것'이라 하면서도 가로되, '장관(壯觀)!'이라 한다. <열하일기>는 33참(站:역) 2030리의 대장정이다. 선생이 비록 말의 왼쪽엔 벼루요, 오른쪽엔 거울, 붓 한 자루, 먹 한 장, 작은 공책 네 권, 정리록(程里錄) 한 축이 행장의 전부였다지만 결코 눈과 귀가 모자라 천하의 장관을 놓친 게 아니다.

저 깨어진 기와 조각은 천하에 버리는 물건이지만 포개서 물결무늬 등을 만들 수 있고, 똥은 지극히 더러운 물건이지만 이를 밭에 내면 우리를 살찌우는 온갖 곡식의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연암은 청나라에서 이것을 보았고 이것이 북학(北學,청나라에서 배우는 학문)이요, 실학이라 여겼다. 연암이 <열하일기> '도강록'의 '거제(車制)'에 수레와 수리기구 등에 대한 이해를 적어 놓은 것도 저러한 생각에서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였다. 박제가의 <북학의> '분오칙(糞五則)'의 글을 보면 "한양의 성중에는 매일 인분이 뜰이나 거리에 버려지고 … 분뇨는 거두지 않고 재가 길가에 버려져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눈을 뜰 수 없고 … "라고 밝혔다. 사람들은 분뇨나 재를 더러운 것이니 가치 없다 여기고 내쳤다. 그래서 연암은 '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 여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고 말한다.

연암의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은 이러한 생각으로 잉태해낸, 똥으로 풀어본 못난 양반들 비판 소설이다. <예덕선생전>은 '똥을 푸지만 덕이 있는 엄 행수 선생 이야기'정도 의미다. 엄 행수는 서울 민가의 인분이나 가축의 똥을 수거하는 일을 하는 역부이다. 그런데 나라 안 제일의 학자 선귤자(蟬橘子)가 이 엄 행수라는 분뇨수거인에게 '예덕선생'이라는 칭호를 지어 바치고 벗으로 삼는다. 그러자 선귤자의 제자인 자목(子牧)이, 분뇨수거인에게 선생이란 칭호가 다 뭐냐고 대드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선귤자는 엄 행수에게 선생이란 칭호를 붙이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엄 행수는 똥을 져서 밥을 먹고 있으니 지극히 불결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가 밥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을 따지자면 지극히 향기롭다. 그의 몸가짐은 더럽기 짝이 없지만 그 옳음을 지키는 것은 지극히 높다. 그 뜻으로 미루어 보면 비록 만 섬에 해당하는 부역이다. 이 점에서 보면 깨끗한 것에도 더러운 것이 있고 더러운 것에도 깨끗한 게 있을 뿐이다.'

또 선귤자는 우도(友道)까지 끌어와 설파하며 제자를 곰살궂게 꾸짖는다. 그러나 제자 자목은 건성으로 코대답만 하다가 발끈해서는 귀를 틀어막고 "이야말로 선생님이 저를 시정의 똥이나 퍼 나르는 종따위 일들로 가르치려는 것일 뿐입니다"라며 독설을 퍼붓고 달아난다.

연암 당대도 그렇지만 지금도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똥만 싸는 자와 치우는 사람, 일하지 않는 자와 자가품이 들도록 일만 하는 사람, 세습적인 가해자와 세습적인 피해자이다. 부모 잘 만나 똥질과 방귀질만 하는 자와 그걸 치우고 끼닛거리의 거름으로 만드는 자 중, 남우세스런 짓을 누가 하는 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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