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글쓰기] 40년 전 '사랑의 메시지' 책에 담은 하상혁씨
[보통사람의 글쓰기] 40년 전 '사랑의 메시지' 책에 담은 하상혁씨
  • 인천일보
  • 승인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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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보냈던 손편지 영원히 간직하고파…"
▲ 하상혁씨가 본인의 저서 '처음부터 짝이었어'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하상혁씨의 저서 <처음부터 짝이었어>의 표지. /사진제공=하상혁

▲ 하상혁씨의 실제 친필 연애편지들. /사진제공=하상혁

▲ 하상혁씨의 실제 친필 연애편지들. /사진제공=하상혁

"까톡" 단 0.1초의 메시지는 못다 한 말을 대신하는 또 다른 대화의 방식으로 중요 수단이 된 지 오래. 오늘날, 연인들은 이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거나 때때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옛 연인들은 밤새 종잇장을 찢어가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날을 꼬박 새우고서도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들을 손편지 한 장에 담았었다. 1000통의 연애편지를 썼던 한 남자, 글로 연애한(?) 하상혁(60)씨의 달달한 연애 스토리가 지금 시작된다.


가까이 있다는 숨막힘 만으로도 이미 가열되는 몸뚱이는
언젠가는 네 가슴속에 철철 넘쳐흐르고 싶어
언뜻 스쳐가는 바람소리 조차 천사들의 시샘으로 들리고
곧 이어 세상이 어두워 지다.
여윈 팔목에 핏줄 돋도록 꽉 끌어안은 따스함.
숱한 사람들이 거쳐간 길을 나도 가야만 된다는 슬픔과
나도 갈수 있다는 기쁨이 한데 어우러 지는 모순.
하얗게 질린 주저와 자그마한 거부를 외면하며
밝음이 그렇게 싫었던 적도 없었다.
포도송이 깨물 듯 두려움을 터뜨리고
차라리 빼앗기듯 그 눈빛을 따랐다.
캄캄한 눈감음 속에도 무지개 같은 기쁨이 보여
세상이 온통 파아래 보였다.
별이.
그리고 별이
몽땅 쏟아지고…
<처음부터 짝이었어_돋보기 쓰고 읽는 옛 추억 中>

#1000통의 편지, 1000번의 마음
IT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 하상혁씨는 정년보다 일찍 맞은 퇴임 후 고민이 들었다. 바쁜 직장생활로 해보지 못했던 모든 것을 해보겠노라 다짐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평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평생 몸담아왔던 IT분야의 재능을 살려 '코딩' 관련 교재를 만들어 볼 구상을 하게 됐다.

"막상 뭘 할지를 정하고 나니 책을 만든다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졌죠.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몰랐을 때 마침 인근의 도서관에서 독립출판 관련 강좌를 듣게 됐습니다. 독립출판이 책의 또 다른 장르라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됐죠. 이것을 계기로 책을 만들게 됐습니다."

강좌를 통해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출판 경로와 방법들을 터득하게 된 하상혁씨는 저녁시간 틈틈이 강의를 들어가며 책을 만들기 위한 시간들을 보냈다. 강의의 마지막 과제는 실제로 책을 발간하는 것이었다. 물론 코딩 교재를 발간하는 것까지는 무리란 생각이 들었고 하씨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것 중 하나는 아내와 주고받던 '연애편지'였다.

"아내와 교제할 때 꾸준히 써왔던 손편지를 아내는 버리지 않고 여행용 캐리어 가방 한가득 모아 놓았었죠. 이사를 하면서도 편지들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터라 훼손될 것이 우려돼 언젠가는 스캔을 하든 책을 내든 영원히 간직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이 기회에 책으로 내보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슬픔과 마주할 때
지금은 더 큰 슬픔을 녹여야 할 때
터질 듯한 오열을 소화시키려
절망을 물도 없이 삼키고
자꾸만 울음을 악물었다.
움푹 패인 가슴을
만념으로라도 채워보려고
한 모금 머금었다 뱉아 버렸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장갑낀 손으로 머리카락을 집듯
조그맣고
어렵게
"그건 사랑일지도 몰라"
<처음부터 짝이었어_만년필이 질투를 하나? 中>

#항상 그 자리에서
책을 만들기 위해 아내와 교제하던 때 주고받아왔던 손 편지를 꺼내 들고 보니 눈대중으로만 봐도 수 백통, 아니 수 천통은 족히 돼 보였다. 절절하고 풋풋했던 시절을 그는 다시금 떠올렸다.

"아내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며 자랐죠. 당시 신문을 구하기 위해 하굣길에 꼬박 들린 신문 보급소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죠. 지금의 장인어른이 운영하시던 신문보급소에서 학교에서 보던 여자 애를 보니 내심 반가웠죠."

하상혁씨와 지금의 아내는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낸 동창 사이였다. 그저 친구로만 지내던 그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였다.

"졸업 앨범을 보니 가정 실습하는 아내의 모습이 찍혀있더라고요. 순간 번쩍하며 미소 짓는 아내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친한 친구 사이로 지내오던 어느 날, 그녀와의 관계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대학 입학 후 쌍쌍파티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죠. 새내기였던 저는 파트너로 그녀를 지목했고 그때 처음 그녀와 사귀게 됐습니다."

글쓰기에는 제법 자신이 있었던 하상혁씨는 그녀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군 입대 후 1년간 400통이 넘는 편지를 썼고, 연애 시절 주고받은 편지만 해도 1000통이 넘었다. 9년의 교제 끝에 지금의 아내를 맞아 30여 년을 함께 했다.

"불같은 사랑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내는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저를 기다려준 사람이죠. 여태껏 큰 다툼 없이 지내온 것도 아내의 배려심이 컸기 때문입니다."

책이 나온 뒤 가장 기뻐했던 사람 역시 아내였다. 글과 사진은 물론 편집까지 모두 하상혁씨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라 의미가 있었다.

지난해 출간한 하상혁씨의 저서 <처음부터 짝이었어>는 이처럼 아내와 주고받던 연애편지를 평소 사진찍기를 즐겨하던 그의 사진 작품을 더해 만든 책이다. 특히 책의 말미에 사진과 '언어유희'적 재치가 돋보이는 문구를 넣은 페이지는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 시인 하상욱을 연상케 했다.

"사진이나 글, 편집까지 직접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과제 형태로 만든 거라 조금 아쉬움도 남지만 막상 책이 나오니 뿌듯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미술에 재능 있는 아들과 함께 다시 한번 각색해 책을 출간하고 싶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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