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설 희망교육연구소장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했다. 금수강산은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매우 아름답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를 삼천리라고 하는 것은 전라남도 남해 땅 끝 마을에서부터 함경북도 온성 또는 웅기까지의 거리라고 한다.
어렸을 적에는 우리나라가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삼천리금수강산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공기가 그렇게 맑고, 상큼하여 들이마시면 가슴속까지 시원했다. 예전의 일기예보하면 날씨가 추운지, 더운 지,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바람이 많이 부는지 등이 주요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요즘의 일기예보의 가장 중요한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미세먼지 농도가 어떻고, 황사가 어떻고 그래서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지, 마스크는 어떤 것이 좋은지를 따진다. 마스크 없이 외출을 하면 큰일이 난다고 하고, 가능한 외출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난리들이다.

옛날에는 물이 오염되지 않아 시냇물, 계곡물, 우물물도 그냥 마셨다. 개울가에 지천으로 흐르는 것이 물이고, 땅을 파면 저절로 맑은 샘물이 솟아나왔다. 천지에 흔한 것이 물이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무한정 쓴다는 뜻으로 '물 쓰듯 한다'고 했다. 더욱이 물을 사 먹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수돗물이나 검증되지 않은 샘물을 그냥 먹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을 사 먹거나 정수기 물을 마신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물장수이고, 대기업마저도 물장사를 한다. 이제는 머지않아 공기도 사 마셔야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물과 공기뿐만 아니라 삼천리금수강산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불과 50여년 만에 고향산천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고향산천이 공장지대가 되고 공기, 물, 토양 등이 오염되어 가장 살기 좋지 않은 곳이 됐다. 어릴 때 뛰어 놀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라 신도시 건설과 공장의 매연과 소음으로 오염된 곳이 많다. 태어난 집도 없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북한을 떠나온 실향민만이 아니라 이제는 필자도 이 시대의 새로운 실향민이 됐다.

고려 말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회고가에서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맞지 않는 말이 됐다. 산천이 의구한 것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길이 생기고, 신도시와 공장이 생기다보니 이제는 고향 가는 길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찾아갈 수가 없을 정도가 됐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되었고, 천지가 개벽을 했다. 어릴 때 뛰놀고, 소를 먹이던 할미산 반쪽이 완전히 없어지고, 공장들이 들어섰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수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조상들은 도저히 고향을 찾아올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제사나 차례 때에 저승의 조상들과 부모에게 집을 찾아올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을 보내드려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의 금수강산이 자꾸만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깝고,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