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낮은 곳에 헌신한 베네치아의 비발디
[문화산책] 낮은 곳에 헌신한 베네치아의 비발디
  • 인천일보
  • 승인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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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묵 인천콘서트챔버 대표


한국에서 12시간의 비행 끝에 만나는 이탈리아. 그곳 도시 중 물의 도시라 불리는 섬 베네치아. 10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400개의 계단형 다리로 이어져 있다. 도시 안에는 자동차를 찾아볼 수 없고 자전거 또한 이곳에선 불필요한 교통수단이 된다. 출퇴근 시간 직장인과 학생들은 버스를 타듯 배를 타고 이동한다. 우리가 지하철과 버스를 자연스럽게 이용하듯 그곳에서는 배를 이용한다.


또한 지구상의 모든 민족을 만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곳이다. 중세 시대부터 무역상과 이방인이 꾸준히 왕래하는 곳이다. 10세기부터는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다양한 지역과 무역을 통해 쌓은 부를 기반으로 막강한 권력과 특권을 행사했다. 축적된 부를 자랑하기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았고, 다양한 예술작품을 탄생시켰다. 장엄한 성 마르코 성당과 광장, 인류 최초의 카페, 유럽 최초 공공 오페라극장 등 최초와 최고가 가득하게 화려한 예술을 뽐내는 예술의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공작새처럼 화려함을 뽐내는 동안 낮은 곳에서 불을 밝힌 이가 있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서양 클래식 음악 중 하나인 '사계'의 주인공은 17세기 베네치아 출신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다. 바이올린 연주를 업으로 삼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악기 연주법과 작곡법을 습득했다. 하지만 음악가가 아닌 가톨릭 사제의 길을 택하여 20살 무렵 서품을 받고 본격적인 신부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미사를 제대로 집도할 수 없었다. 주로 사생아와 고아를 보육하는 베네치아 내 병원 부속 시설로 발걸음을 옮겨 아이들을 위해 기악과 합창수업을 진행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 그의 작품은 성당의 정기 자선음악회 작품이 됐다. 아이들은 그의 작품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단순한 자선음악회가 아닌 수준 높은 작품과 새로운 무대 연출을 시도해 점차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다.

관중은 그가 창작하고 연출한 무대를 감상하기 위해 성당 안팎은 물론이고, 가까운 수로에 배를 대고 음악 소리에 집중했다. 그의 인기는 유럽 전역에 알려졌고, 다른 나라를 오가며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유행 양식인 오페라를 다수 작곡했지만 독주 악기와 뒷받침해주는 악기들이 함께 연주되는 양식인 협주곡 창작에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특히 바이올린 연주에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 당시 가톨릭 교황 앞에서 2회에 걸쳐 연주를 선보였다.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한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사후 4년 뒤 그를 기억하기 위해 성당이 건립되고 그곳에서 그의 학생들은 그의 작품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그를 기억한다. 시간은 흘러 아이들은 베네치아의 음악을 발전시키는 음악가로 자라났다. 베네치아의 음악을 비발디의 제자들이 키워낸 것이다.

물론 비슷한 시대 베네치아에는 뛰어난 음악가들이 많았다. 그들은 주로 성 마르코 성당의 음악을 담당했다. 안드레아 가브리엘리(1510~1586), 지오반니 가브리엘리(1553~1612),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비발디는 웅장하고 화려한 성 마르코 성당이 아닌 작은 보육 시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베네치아의 화려한 영광에 가려진 약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음악으로 헌신했다. 그의 노고는 지금도 이어져 그와 그의 제자들을 기억하는 프로그램까지 개발되어 진행 중이다.
어느 시대든 자신보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의인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다. 베네치아는 400여 년 케케묵은 작은 영웅을 기억하고 있다. '사계'를 창작한 음악가 비발디지만 베네치아는 그를 음악가이자 참스승으로 기억한다.

각 지역의 역사에는 교과서처럼 자주 등장하는 인물뿐만 아니라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있을 것이다. 도시는 그들의 업적을 가려 품기보다 그들의 삶과 노고를 기억해야 한다. 때론 그것이 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선조의 지난 발자취다. 크고 영광스러운 업적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작은 영웅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억될 가치가 있다. 우리가 머무는 곳 인천. 우리의 작은 영웅을 기억하기 위해 교과서 안팎의 인물을 다시금 꺼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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