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달 … 이겨내는 '새해'

 

▲ 그림=소헌 '歲(세월 세)의 약자( )는 서산(山)에 달(月)이 지는 모습이다'

 


설은 음력 1월 첫날을 의미하며, 원단元旦, 정초正初, 세초歲初, 세수歲首라고도 한다. 설은 흩어져 사는 가족이 만나는 한민족 최대 명절이다. 이보다 가슴 설레는 날이 어디 있겠는가? 형제들이 만날 수야 있다면 그곳이 험한 산이면 어떻고 깊은 물이면 어떠랴. 고향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 막힐수록 그리움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타이요시(他餌聊始)는 '남의 떡으로 겨우 설을 쇤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음식으로 설을 보낸다는 4자속담이다. 올해는 50%에 이르는 근로자들이 상여금이나 선물을 받지 못했다 하니, 작은 것이나마 함께 나누고 베푸는 설을 소망한다.

▲歲 세 [해 / 새해 / 설 / 나이 / 세월]

1. 止(지)는 '발'을 뜻하며 움직여 나아가는 것이었으나, 점차 '머문다'고 굳어졌다.
2. '세월'을 뜻하는 歲(세)에는 '발'이 두 개나 들어 있다. 止(발 지)와 步(걸음 보) 생략형이다. 歲의 원래 뜻은 '자르다'였다. 크고 둥근 칼날과 장식(止)이 있는 도끼(戊무)를 담은 글자다. 농작물은 매년 한 차례 베어 수확하는데, 여기에서 '해, 나이'라는 의미가 나왔다.
3. 歲에 쓰인 止(지)는 정상적으로 걸어가는 발이다. 아래의 발은 止가 거꾸로 된 모양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발걸음이다. 歲에는 걸어가지 말라고(止지) 도끼(戊무)로 발뒤꿈치를 끊어버린다 해도 세월은 흐른다는 이치를 보여준다.
4. 歲의 약자 (세)는 저녁달(夕·月)이 서산(山)을 넘어가는 매우 운치 있는 글자다. 세월歲月을 호미(戊)로 막고(止) 가래(戊)로 막을(步)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귀밑머리 흰털을 몰래 뽑아(戊) 두 발바닥(止+步)으로 짓밟는다 해도.

 


▲時 시 [때 / 계절 / 시대 / 기회]

 


1. 寺(사)는 '절'이다. 불교를 숭상할 때에는 손바닥(寸촌) 만한 땅(土)만 있어도 절을 지었다. 이후 寺는 외국 손님을 접대하는 '관청 시'로도 쓰게 된다.
2. 관청(寺시)에서는 해(日)의 위치를 보고 시간(時)이나 계절(時)을 알았다. 글공부(言언)를 열심히 하면 관청(寺)에서 주관하는 과거에 응시하여 詩(시)를 쓸 수 있고, 급제하면 사람()이 관청(寺)에서 나와 당신을 모시러(侍시) 올 것이다.

세시풍속은 세계에 유래 없는 문화를 이루었다. 일제는 이러한 조선의 전통을 말살시키려고 하였다. 그들은 설을 오래되고 낡은 구정舊正이라 치부하였다. 우리민족은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뭉쳤으니 설은 민족을 하나로 묶는데 정신적인 뿌리가 되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역대 정권에서는 설의 가치를 몰랐는데, 한때(1986~1988)는 '민속의 날'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말을 쓰기도 했으니. 설은 단순히 명절이나 휴일에 그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분단은 우리 형제들을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이제 하나가 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곳이 서울이면 어떻고 평양이면 어떠랴. 하지만 우리끼리가 아닌 외세가 나서서 남의 차례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되겠는가?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