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지 인천대 사회복지4

한 해의 흐름을 예측, 분석하는 '트렌드 코리아'가 매년 발간된다. 저자는 '당신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세대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예스'다. 청년들은 '직장이 나의 전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적당히 벌면서 잘 살기를 희망하는 젊은 세대들을 가리켜 '워라밸 세대'라고 말한다.
2년 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일과 가정의 우선도에서 가정이 우선이라는 응답은 증가(11.9%→13.9%)한 반면 일이 우선이라는 응답은 감소(53.7%→43.1%)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은 이제 메가 트렌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워라밸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갈망하고 있다. 특히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워라밸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17년 기준 OECD 평균 워라밸지수는 6.5점이다. 하지만 한국은 4.7점으로 35개 가입국 중 32위를 차지하며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일과 삶의 균형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권리가 일부만 누리는 특권처럼 존재한다.

워라밸은 파괴된 일-가정 균형의 치료제로 등장했다. 그렇다면 일-가정의 균형이 파괴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전통적인 성별분업과 장시간 노동문화가 결합된 한국적 상황을 그 원인으로 진단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생계 부양을, 여성이 돌봄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후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시장 진출이 확대됐다. 여전히 돌봄의 영역은 여성에게만 해당되었기 때문에 여성은 세계 최고수준의 장시간 노동과 돌봄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성들이 경력단절에 따른 돌봄의 영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전 기성세대에서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워라밸 세대는 이것을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수용하기를 거부한다.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열띤 주제는 단연 취업이다. 각자 입사를 희망하는 직장이 가진 매력적 요소는 다양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워라밸로 수렴된다. 취업과 함께 대부분의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는 '출산은 곧 퇴사'라는 공식이 통용되기도 한다. 지난 십수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으며 어려운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차라리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겠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워라밸이 보편적인 권리로서 보장된다면 이를 원동력으로 추가적인 권리회복이 가능해 보인다. 노동을 희망하지만 돌봄 책임으로 인해 노동시장에 진출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 노동권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또 노동시장에 내몰려 돌봄을 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이 돌봄의 권리로서 부모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워라밸은 저출산 극복의 핵심키로 작용할 수 있다. 출산포기의 주요 원인이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사회적 인프라, 즉 워라밸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워라밸 세대가 꿈꾸는 '저녁이 있는 삶'은 희망사항이 아닌 실제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