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석 경기 화성문화원장

 

어느 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한 연예인 가족이 수원화성을 거쳐 융·건릉과 용주사로 향하는 여행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반가움도 잠시. 정조의 효심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융릉과 건릉, 용주사가 화성시에 있다는 언급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역사에 관심 있는 시청자가 아니라면 수원시의 문화재이겠거니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은 또 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우리 화성시는 전국적으로 유례없는 거족적 독립운동을 펼친 곳이고, 일제로부터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이라는 아픈 역사를 겪었다. 그러나 연구 자료를 살펴보다 보면 화성 지역 독립운동사가 아직도 수원시로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더는 사람이 살지 않아도 남아있는 유형의 유적지와, 땅이 없어도 어딘가에 기록되는 역사와 달리 민속 문화재는 땅과 사람, 이를 둘러싼 생태와 시간의 흐름까지 모두 중요하다. 일례로 화성시 팔탄면 구장리의 화성상여·회다지 소리는 경기도가 지정한 무형문화재였지만 전수자의 사망으로 그 맥이 끊겼고, 마을에서 이어지던 각종 정월 대보름 행사들 역시 시대의 변화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화성시가 지닌 무형의 가치들을 보존해 나감에 있어 전혀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수원 군공항 이전 문제다. 군공항이라는 거대 시설이 수원에서 화성으로 오게 되면 얼마나 많은 자연과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될지 두렵다.

화성시는 넓은 면적을 지닌 도시다. 화성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땅 크기가 서울의 1.4배에 이른다고 알려주면 깜짝 놀랄 정도다. 그만큼 화성시에 사는 주민들의 거주 형태와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하다. 서해안을 접한 지역 주민들은 어업이 성행하던 시절, 풍어제뿐 아니라 변화무쌍한 바다 날씨와 해상 재난으로부터 마을의 안녕과 가족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왔다. 농촌에서는 마을굿과 줄다리기 풍속이 이어져 왔다. 마을의 고유한 제례와 문화들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것이 화성문화원의 큰 사명이다. 그러니 화성문화원장인 나로서는 화성시와 사전 협의 없이 수원시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수원 군공항 이전 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문화를 사라지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사람이 마을을 떠나는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명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노인 한 명이 그 마을 고유의 민속과 신앙, 생활풍속 등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런 말이 생겼을 것이다. 노인이 사라지는 것에도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다는 비유를 하는데, 만약 수원 군공항이 화성시로 이전된다면 그 지역의 향토문화와 풍습까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수원 군공항 이전의 결과로 사라지는 것 중에는 자연환경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문환경도 포함되어 있다. 부디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다 같이 고민하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안에는 한 번 사라져버리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소중한 화성시의 민속 문화가 달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