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지난해 8월 어느 날, 광운대학교 교수인 고교 동창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동료 교수 한 분이 인천으로 갈 테니 시간 좀 내주시게." 며칠 후 광운대 이향철 교수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그는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전했다. 광운대학교의 설립자인 '조광운 선생'이 인천 출신이라는, 그야말로 '깜놀'이었다.

조광운은 1899년 5월20일 인천부 신화수리, 지금의 동구 화수동에서 태어났다. 동네 사숙(서당)에서 5년간 공부한 후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교)에 입학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화도고개를 넘고 수문통을 건너 우각리 학교에서 신학문을 접했다. 광운은 졸업 몇 개월 앞두고 군국주의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했다. 잡화상과 변호사사무소에서 일했고 1907년 말 그동안 모은 돈으로 면포상을 열었다. 그때 야간으로 운영되던 인천공립상업학교(현 인천고)병설 1년제 간이상업학교에서 공부했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증권회사에서 3년간 일한 후 귀국해 서울의 남대문 근처에 석유램프를 취급하는 가게를 열었다. 1934년 전구와 소켓, 광석식 라디오 수신기를 파는 남대문상회 내에 '조선무선강습소'를 개설했다. 이것이 광운대학교의 시작이었다.

광운의 호적에 적힌 '신화수리 127번지'를 함께 탐방했다. 화도진 아래 빌라촌으로 변해 버린 '쌍우물 동네'다. 그의 호는 '화도(花島)'이고 광운대의 본관 건물 이름은 '화도관'이다. 그는 그만큼 이곳을 오매불망 잊지못했고 한없이 사랑했다. 올해는 조광운 선생이 태어난 지 120년 되는 해다. 학교법인광운학원(이사장 조선영)측은 올해 설립자의 회고록을 출간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참에 어떤 식으로든 광운의 고향(동구)도 함께 했으면 한다. 이제 며칠 후면 설날이다. 사람도 혼백도 모두 고향을 찾는다. '화도' 조광운이 화수동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