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야 할지 찾고 싶다면 주저 말고 떠나보세요"
▲ 조성욱 작가가 쿠바에서 버스킹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조성욱 작가

 

▲ 조성욱 작가가 펴낸 '지구 반대편에서, 버스킹'. /사진제공=조성욱 작가


기타 하나 둘러메고 젊은 날의 패기로만 떠난 세계일주, 그가 1000일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 땅으로 돌아왔을 땐 '성장'과 '용기'라는 선물이 두 손 가득 들려 있었다. 낯섦이 익숙한 무명의 버스커는 언어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지만 음악으로 하나 된 지구촌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쿠스틱 기타로 세상을 연주하는 청년, 조성욱이 들려주는 버스킹 월드투어가 지금 시작된다.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용기를 무기 삼아 거리로 나갔습니다. 수줍게 곡이 끝나면 사람들은 이내 박수를 쳐주었고, 누군가는 음료수로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텅 비어 있던 공간이 음악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이 작은 공간을 따뜻함으로 채워줄 수 있다는 사실에 제 생애 처음으로 음악으로 인해 행복함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버스킹은 마치 촛불과 같습니다. 그 속에 특별한 따뜻함이 있습니다. 나는 그 따뜻함이 좋습니다. 그 촛불은 점점 더 먼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렇게 나의 버스킹 세계일주는 시작되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버스킹 中에서)

#나를 찾는 여행
각종 해외연수다 자격증이다 뭐다 스펙 쌓기로 취업 고민을 토로하던 또래들 사이에서 조성욱 작가는 남다른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얼까'라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은 그를 고민에 빠뜨렸다. 경기도 파주에서 나고 자란 조 작가는 어릴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던 무렵까지 피아노를 다뤄왔다. 그러다 문득, 피아노를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졌다. 피아니스트로서 잘해 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오랜 시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피아노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음악을 깊이 배울수록 회의감과 좌절감이 든 조 작가는 현실적인 벌이 수단으로 제과제빵에 관심을 갖게 된다.

"군입대 후 빵을 즐겨먹었어요. 제과제빵 관련 책을 읽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휴가가 주어질 때면 카페를 찾아 직접 배우기도 했죠. 세계일주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때부터였어요. 세계 각지의 전통 빵을 공부해서 세계 빵 지도를 만들어 보자는 꿈이 생겨 전역 후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고 여행길에 올랐죠."
25살이 되던 해부터 시작된 여행은 대학교에서 교육받는 기간과 동일하게 4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며 빵을 배우자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부푼 꿈으로 시작된 여행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당초 여행의 목적이었던 빵 공부는 뒷전이 됐고 하루의 절반을 돈벌이 수단으로 해오던 버스킹 공연을 하면서 보내게 됐다.

여행이 시작된 후 4주가 지났을 무렵 그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찾아온다.
"모로코를 여행할 당시 강도를 당했어요. 휴대폰이며 노트북이며 여권, 신용카드 등 모든 것을 도둑 맞고 허탈한 심정으로 주저앉아 있었죠. 물건들이야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지만 한번 잃어버린 용기는 쉽게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빈털터리가 된 그에게 쥐어진 건 낡은 기타 하나뿐, 평생을 해오던 음악은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고 목적과 목표가 상실된 상태에서 여행을 지속하기란 어려웠다. 여행을 멈추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나다운 여행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여행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다 그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버스킹으로 세계일주를 해보자' 버스커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황당한 발상이었지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미 그의 몸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현재는 선물이라고 했다. 무엇을 하든 고민은 뒤따르기 마련이다. 현재만 즐기자니 미래가 걱정되고 미래를 준비하자니 현재가 불행하다. 둘 다 잡을 수 없다는 불가능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되 결과에 상관없이 나의 태도가 언제나 '행복'과 '감사'로 이어지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은 일을 하며 삶을 살아낼 것이다. 다시는 이 시간이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지구 반대편에서, 버스킹 中에서)

#무명 버스커의 1000회 콘서트
아시아에서 온 낯선 무명의 버스커는 호주, 유럽, 미국, 캐나다, 남미 등 45개국의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음악이라는 만국 공통어로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단연코, 여행을 하며 즐겁고 신나는 경험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이뤄지는 공연인 만큼 경찰에 쫓기는 일도 부지기수에다 냉랭한 관객들의 반응과 무관심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됐다. 그럼에도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음악으로 공유했던 감동의 순간들과 관객들이 건네준 따뜻함에 있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700일 정도 됐을 때였을 거예요. 멕시코 산크리스토발이라는 도시를 여행할 때 두 명의 소녀가 저의 공연을 보러 왔죠. 그 소녀들은 저를 식사 대접을 하겠다며 초대해 줬고 너무 고마웠던 저는 당시 남미에 케이팝 열풍이 불고 있던 터라 외장하드에 있던 한국 드라마와 음악들을 주며 감사를 전했죠."
45개국을 여행하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 만큼 버스킹 공연도 다양하게 이뤄졌다. 기후나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곡도 천차만별이었다.

"미국 동부 다르고 서부 다르고 생활양식이 다른 만큼 좋아하는 음악이나 반응도 다르더라고요. 한 번은 비틀즈의 음악을 공연했는데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곡이 미국에 오니 냉랭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남미의 경우 케이팝의 인기가 상당했었죠. 한국의 곡들로 선곡해 공연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음악을 듣기 위해 몰려오곤 했었죠."

'많은 사람들은 내게 묻습니다. 어떻게 여행을 시작했는지 정말 버스킹으로 여행이 가능한지. 여행이 끝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대답합니다. "조금씩 가슴이 뛰는 일들을 쫓다 보니 이곳까지 왔다. 이 여행이 끝날 때쯤 다시 내 안에 가슴 뛰는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요. 어쩌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산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엔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버스킹 中에서)

조성욱 작가가 45개국의 여행을 하며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때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고, 익숙한 한국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낯선 이국땅에 있는 것보다 두려웠다.

"처음엔 방황을 많이 했죠. 나같은 여행자는 없다는 우월감과 나보다 뛰어난 연주자들을 보며 한없이 부족한 내 실력에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난 뭘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숱하게 했죠. 그러나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어 좋았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찾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히려 하얀 백지상태에서는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게 됐죠."

현재 조성욱 작가는 국악 퍼포먼스 그룹 '넋넋'과 2인조 퓨전 밴드 '등잔 밑 스튜디오'의 기타리스트로 활발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다시 영화 음악가의 꿈을 키우며 가슴이 뛰고 있는 그였다.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세계일주, 제2의 조성욱이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품어 보지만 막상 실행으로 옮기기엔 망설여진다. 조 작가는 이들에게 조언한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많고 돈이 없어 여행을 못 간다고 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시간이 없어 여행을 못 간다곤 하죠. 핑계를 방패 삼아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낯선 장소를 찾아가는 작은 여행부터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