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리 분더슐레정신분석심리상담센터 대표협성대 초빙교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거대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먼 바다로 혼자 고기잡이를 나갔던 한 늙은 노인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굉장한 물고기'와 사투를 겪는 이야기다. 결국 청새치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떼를 만나 다 뜯기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고기와 함께 귀항하는 내용이다. '나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놈에게 보여주고 말겠어'라는 것이 노인의 생각이다. 그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 헤겔은 이것을 누가 주인인지를 겨루는 '인정투쟁'이라 말한다.

생사를 건 이 싸움에서 패배를 시인하면 노예가 된다. 둘은 죽을 때까지 싸운다. 그러나 노인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사는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투쟁에는 과거는 아무 의미가 없고 삶의 순간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한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노인의 신념이며 작품의 주제다. 바다는 생존투쟁의 공간이지만 한 늙은 노인에게는 인정투쟁의 공간이기도 하다.
'인정투쟁'은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책 이름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다. 인정받기 위한 투쟁까지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무시와 모욕이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마침내 폭동이나 봉기 같은 사회적 투쟁을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를 의식하며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나 남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무리가 따르고 허식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자기 의지와 소신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대로 봐주면 된다. 서로가 인정받기 위한 투쟁은 목숨을 건 투쟁이다. 문화철학에서 의미하는 인정투쟁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서, 인정받기 위해 투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독일 교육학자 프뢰벨은 인간의 교육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보다, 먼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규명하고자 했다. 교육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어떠한 교육목적으로,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 교육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뢰벨은 인간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어떤 독자적인 능력을 가진, 신의 본직을 지닌 존재로 보았다.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모든 것의 존재 근원 또한 '신'이기 때문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모든 것 속에 신이 깃들고 신적인 것이 작용하며 또 지배한다고 보았다. 인간을 인식하는 존재, 이성을 갖는 존재로서의 신의 특수한 사명과 특수한 직분을 부여 받은 존재로 보았다. 인간의 본질은 인간 속에 있는 전적인 것을 따라 자신의 사명과 직분 자체를 충분히 인식하고 명확하게 통찰한 후, 다시 그것을 자신의 결정과 자유로서 자기의 생명 속에서 실현하고 활동시켜 구현하는 것이라 보았다.

인간은 먼저 자신의 신적인 본질, 신적인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주된 사명이라 말한다. 타고난 본질이 왜곡되거나 방해와 간섭을 받아서는 안되며, 내적인 것, 즉 타고난 본질에 기초를 두고 오히려 그것을 도와 돌보며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프뢰벨은 교육이 이처럼 수동적이고 보호적이어야 하며, 내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외적으로 규정하는 모습일 때 그것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착한 교육, 올바른 교육, 참된 교훈에 있어서는 필연성이 자유를, 법칙이 자기 결정을, 외적 강제가 내심의 자유의지를, 외적 증오가 내심의 사랑을 환기해야 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법칙이 기반과 붕괴의 강제가 노예근성을, 필연성이 맹종심을 낳으며, 압박이 파괴와 타락을 낳고 무거운 짐이 파멸과 비천을 초래하며, 엄격함에 의해 가혹과 반항과 불신을 낳는 곳에서는 모든 교육 즉, 교육, 교수, 교훈의 작용은 모두 파괴된다고 말한다.

결국 인간은 존재로서 인정받고 인정할 때 비로소 투쟁이 필요 없이 평등과 평화를 이루어 내는데 그 삶의 궁극적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라 말했다. 형편이 어떻든 그가 어떠한 사회적 지위나 능력을 가졌든 남을 존중하고, 같은 것을 같고, 다른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대할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사회에 주어진 규칙을 따라 살기보다는 나 자신이 그 규칙을 세워 세태의 뜻이 아닌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가능한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