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사를 접했다. 영국에는 신분증이나 주민등록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주거를 관리하지 않아, 영국인은 평생 관공서를 방문해 신고해야할 일이 출생신고, 혼인신고, 사망신고의 3번밖에 없다고 한다. 선거의 투표에서도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 주소와 이름을 말하면 투표용지를 내준다니, 국가의 관리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로, 혹 가짜뉴스인가 했다. 영국인은 국가권력에 대해 태생적이고 신경질적인 의심이 있어, 국가라는 비인격적인 존재에 자신을 통제할 권한을 주는데 대해 반감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이 어디에 사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말고, 알아서도 안 된다는 무언의 합의가 있어,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신분증이나 주민등록제도를 만들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을 섬긴다는 민주정부시대에 진입했는데 정부의 국민관리제도는 없어지지 않고 있다.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있을 수 없다며 기구를 개편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금번 청와대 사태에서 제기된 민간인 사찰문제처럼, 아직도 정부가 국민을 감시 ·관리하고 있다는 의심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오래 전 타 지역으로 이사를 하여 전입신고를 하러 동사무소(현 행정복지센터)에 들렀는데 창구직원이 통장의 도장을 받아오라 했다. 통장이 누군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도장을 받아와야 전입신고가 된다니 어처구니없는 행정절차에 아연실색했다. 그런 절차가 필요하다면 통장이 동사무소에 출근하여 전입신고절차에 응해야지 무슨 소리냐며 지적했었다. 지금이야 간편한 제도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터무니없는 제도는 여전한 것 같다.

며칠 전 아파트 현관문에 '2019년 일제 정리 세대 방문 안내문'이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주민등록사항과 실제 거주사실을 정확히 일치시키기 위해 합동조사반을 편성, 각 세대를 직접 방문하여 주민등록 사실조사를 하니 조사에 적극 협조하라는 내용이었다. 부재중으로 조사가 안됐으니 통장에게 연락하라며, 거주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거주불명등록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반 협박성 문구도 덧붙여 있었다. 각종 세금도 내고 그간의 선거에도 성실히 임하며 잘 살고 있는데, 새삼 거주 사실을 확인하겠다니 무슨 발상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주민을 귀찮게만 할 뿐인 이런 일이 주민에게 행정편익을 제공하고 행정기관의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위하는 일이라니 어이가 없다.

행정의 간소화는 없어져야할 일들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것이다. 정부가 불필요한 업무를 유지해서 그렇지, 사실 증명서발급 등의 일이 없으면 동사무소를 찾을 일은 거의 없다. 은행들마저도 통폐합되는 시대인데, 국민의 세금만 축내는 불필요한 행정업무는 폐지하고 동사무소 등은 과감히 축소 개편해야 한다. 특히 국민을 관리하는 기구나 제도는 정리해야 한다. 금번 방문조사처럼 잘 살고 있는 주민에게 협박성 문구와 함께 관리를 위해 방문조사가 필요하니 응하라는 태도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응하면 그뿐이겠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렇다 할 필요성도 없는 일을 법적근거도 없이 수행하고 있는 시대착오적 행위라 하겠다. 국민이 반드시 응해야 하는 의무사항이라면 홍보 후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만한 일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만일 정당한 법적절차에 의한 일이 아니라면, 정부는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국민을 감시·관리하는 듯한 이러한 행위는 즉각 폐지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을 관리해야할 부분도 있겠지만, 원치 않거나 강요당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관리는 감시기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에 조선시대의 호구조사와 같은 구시대적인 행정이, 너도나도 하겠다는 이 시대 공무원들의 사고에서 이해될만한 일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국가기관이 국민을 관리라도 하듯 조사하는 일은 민주정부에 부합하지도 않을뿐더러, 구시대적 행정수준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주민간의 불화와 사생활 침해로 고통받는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조용히 방해받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해야할 국가기관이 방문조사를 통하여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겠다니 안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