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찬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설날이 다가오면 신년운세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요즈음에 누가 사주팔자를 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1년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한국 역술시장의 규모가 연 4조원 정도라고 한다. 2017년 한국의 영화시장 규모가 약 2조4000억원이었다고 하니, 우리는 영화보다 점을 더 많이 보는 나라에 살고 있다.

과거 면접 때마다 관상가를 대동했다는 재벌 회장의 이야기로부터 근래 역술인의 조언을 받아 투자했다는 기업가에 이르기까지, 역술은 개인의 일상생활을 넘어서 회사의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몇 해 전 모 방송에서 설 특집으로 용하다는 무속인을 찾아가서 그의 신통력을 시험한 적이 있다. 이들은 무속인에게 연쇄 살인범과 유괴되어 살해된 아이의 사주를 보여주었다. 여러 무속인 중에 몇 명이 사주를 근거로 두 사람의 운명을 근접하게 맞췄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주만 가지고 사람의 운명을 상당히 현실에 가깝게 기술해낸 무속인의 점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사주팔자란 알다시피 우리가 태어난 해, 월, 일, 시 네 가지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나와 사주가 같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를 계산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내가 태어난 해의 출생아 수가 몇 명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 우리나라 출생아수는 대략 33만명 정도이므로 하루 평균 약 900명이 태어났다. 사주의 시는 하루를 12로 나누어 따지므로, 다시 900을 12로 나누면 작년에 태어난 아이들 중 사주팔자가 같은 사람은 평균 70명이 넘는다. 남녀를 구분해도 평균 35명 이상이 사주팔자가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과거 출산율이 더 높았던 사실을 고려하면 나하고 사주팔자가 같은 사람은 성별을 구분하더라도 50명은 족히 넘을 것이고, 이 사람들은 말 그대로 나와 '운명공동체'가 되는 셈이다.
유괴되어 살해되었던 아이와 사주가 같았던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비슷한 운명을 겪었을까. 알려진 유괴사건이 드문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 따라서 유괴된 아이의 사주로 그 운명을 맞췄다면, 그 아이와 사주가 같지만 유괴되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주풀이는 틀렸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사주팔자처럼 태어난 시각과 사람 운명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 우리의 사주와는 다르지만 서양의 점성술사들은 같은 때와 같은 장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 당시 행성의 위치에 영향을 받아서 성격과 삶이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학자 제프리 딘은 런던에서 몇 분 간격으로 태어난 사주팔자가 같은 사람들을 조사한 후, 그들 사이에 성격이나 삶에서 아무 연관성이 없음을 밝혔다. 여러 연구 중에서 가끔 별자리와 성격 사이에 약한 상관관계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는 별자리를 믿는 사람들이 성격을 별자리 운세에 끼워 맞추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점술이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는 숱한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점술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길거리에서는 사주팔자에다가 서양에서 들어온 타로 카드점까지 인기를 더해가는 듯하다. 게다가 점술과 기술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인터넷 토정비결까지 등장하여 점술에 대한 접근이 더 쉬워졌다. 신문에서조차 띠에 따른 운세에 더하여 서양의 별자리 운세까지 보여준다. 둘 중 더 좋은 점괘를 받아가라는 배려인지는 모르겠으나 양복 위에 두루마리를 걸친 모양새다.

원시사회나 문명사회나 불안이 커질수록 미신을 더 찾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염려스럽게도 여러 조사에 따르면 젊은이들의 점술에 대한 관심 또한 식지 않고 있다. 이는 현재 우리 젊은이들이 취업이나 결혼 등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느끼는 불안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터놓고 상담할 곳을 찾기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점집은 비밀보장이 되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다.
점술이 심리적 위안을 준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위로가 아닐까. 설날을 맞이하여 주위 젊은이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