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혁명과 반혁명을 되풀이하면서 살육과 무질서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란 젊은 학자인 토크빌은 미국여행을 통해 탈출구를 찾고자 했다. 수만 명의 반혁명분자를 처단해도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프랑스를 위한 해답을 찾기 위한 학습여행이었다. 9개월간 미국을 여행하고 온 토크빌은 "마을자치를 갖지 못한 나라도 자유로운 정부를 세울 수는 있겠지만, 자유의 정신을 가질 수는 없다"라고 했다.

마을자치는 풀뿌리 자치이다. 풀뿌리 자치는 모태자치이다. 이때 토크빌이 보고 온 뉴잉글랜드의 자치단체인 타운은 주민이 2000~3000명 정도의 규모였다. 타운의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공공의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자유를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작은 일의 실천을 통해 자유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큰 자유를 누릴 수 있겠는가'라고 프랑스의 중앙집권체제를 비판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지방자치를 부활해서 실시하고 있지만 풀뿌리 자치는 파괴되고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주권을 마을단위에서 주민이 직접 실천하는 자유의 공간이 없다.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거하는 것만으로는 주민의 자치공간이 열리는 것이 아니다. 주민이 지방의 삶을 스스로 규정하고, 생활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선출직에 의해 행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중앙집권이다. 주민으로서 자유와 책임은 실종되고 주민은 단순한 행정소비자로 전락했다.

한국에서 풀뿌리 자치의 실종은 오래됐다. 1952년 우여곡절을 겪어 어렵게 도입한 지방자치제도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중단되고, 풀뿌리 자치인 읍·면자치는 폐지됐다. 대신에 군자치를 도입했다. 그 후 1989년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군사정부가 도입한 군자치제를 그대로 계승했다. 풀뿌리 자치의 요구를 철저히 묵살했다.
지방자치가 부활된 이후에도 주민은 선거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중앙집권적 생활양식은 달라진 것이 없다. 주민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실천하고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지위는 찾지 못하고 있다. 풀뿌리 자치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주무부서인 행자부(행안부)는 시·군통합을 통해 자치단체의 규모를 더 확대하려고 했다. 풀뿌리 자치의 말살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자 행안부는 '주민자치위원회'라는 것을 급조해서 풀뿌리 자치로 위장하기 시작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노래나 탁구, 댄스 등을 교육하는 일종의 평생교육기관인 주민자치센터의 운영위원회의 성격을 가졌을 뿐 진정한 자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주민자치위원회에는 주민도 없고 자치도 없다는 비판이 거세어지자 이번에는 '주민자치회'를 구성하겠다고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았다. 최근에 발표된 행안부의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보면 주민자치회의 사무를 규정하여 정작 마을의 구성원인 주민은 실종되고 없다. 의결기능도 없어 단순한 동장이나 읍장 또는 면장의 들러리에 불과하다. 허수아비 자치기관일 뿐이다. 이에 주민자치위원들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자치를 한다고 해서 주민자치위원으로 참여해 마을을 위해 헌신하려고 했는데, 막상 참여해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이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일반 주민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이런 형태를 자치라고 강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아예 이런 기관을 설치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외국어로 번역도 할 수 없는 기형적인 조직이다. 지난 20년간 주민자치위원회 내지 주민자치회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 실시했지만 정작 마을단위에서 주민의 자치를 정착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안부는 자치권 없는 주민자치회를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포함시켜 강행하려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바른 길로 가야 한다. 자치도 없고 주민도 없는 주민자치회 대신에 읍면동 단위의 주민전체를 구성원으로 하는 읍·면·동자치를 부활해야 한다. 모든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풀뿌리 자치를 통해서 향토에 대한 사랑을 애국심으로 승화시키고, 국가가 생활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는 대신에 주민이 스스로 해결하는 능동적 자치의식을 키워온 선진국의 자치단위는 통상 그 규모가 2000~6000명에 이른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공공의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해 집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풀뿌리 자치는 시민의 자유를 실천하고 책임지는 훈련장이다. 읍·면·동단위의 풀뿌리자치를 통해 작은 생활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강건한 시민을 육성함으로써 광역단위와 국가의 민주주의도 지키고 감당할 역량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