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나라 대표 변호사

14세가 되지 아니한 아이들은 형사상 처벌하지 않는다. 형사미성년자인 만13세가 되는 날까지가 초등학생의 나이와 대체로 일치하므로 법률가들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중학교 저학년이 되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형사처벌이 면제되는 초등학교 고학년의 경우에는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을 할 수 있으나, 그 처벌의 경우는 가장 긴 경우가 소년원에 2년간 구금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정신적 성장속도는 기성세대의 초등학교의 경우와 비추어 보면 큰 차이가 없는 반면 그 시절에 비해 체격은 급속히 성장하여 힘에 의한 문제해결 욕구를 자제하기 어렵다. 컴퓨터게임의 폭력성에 쉽게 노출되어 폭력을 오락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도 공부에 지치고 모든 부분에서 서열화돼 있는 우리사회의 특성이 결합되어 아이들의 타인, 특히 힘이 약한 사람에 대한 난폭성은 커지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대부분 아이들의 사고 행위는 왕따 정도의 수준이지만 간혹 어른들을 경악시키는 잔인성이 나타나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한다. 우선, 아이들의 범죄 중 많은 것이 집단폭행이다. 나이의 특성상 친구들끼리 몰려다니게 되므로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육체적 힘이 자신의 권력이라고 믿는 어린아이들의 이성의 한계와 범람하는 게임의 영향으로 폭력행사에 대한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육체의 조숙과 함께 일찍 찾아오는 성에 대한 사고와 우리 사회의 천박한 성인식이 빚어낸 성범죄다. 미성년자 일반의 성범죄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성인에 비해 윤간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특성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장난이 너무나 심각한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다. 오래된 아파트의 옥상에 올라가 화분을 던지며 깨어지는 것을 구경하다가 인명의 살상을 가지고 오는 경우처럼 어이가 없는 사고도 가끔 발생한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형사미성년자의 잔혹한 범죄가 한번 언론을 타고 나면 우리사회는 냄비에 물이 끓듯이 달아오른다.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어 형사처벌의 대상을 넓히자고 하거나 보호처분을 하는 경우에도 소년원의 수감기간을 늘려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시키자는 의견이 난무하게 된다. 범죄현장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언론, 방송을 통해 목격하게 되면서 피해자를 동정하고, 범죄유발자에게 분노하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 속에 깃들어 있는 정의감이 공분의 형태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감정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키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다.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자는 견해는 초등학생이어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형사처벌에 있어서는 범죄를 인식하는 지능과 인식 가능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범죄에 대하여 자각하고 처벌을 통해 사람을 개과선천하게 되는 것이 형벌의 기능인데, 이런 기능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아이에게 처벌은 무의미하다. 처벌의 연령을 획일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법적 안정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입법자의 의도다. 처벌을 마음대로 판검사에게만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과연, 어느 정도 나이의 아이들이 형사미성년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여기서 범죄의 유형, 살인·강간과 같은 중범죄는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는 등의 처벌연령을 달리 정하자는 타협책이 있을 수 있다. 그 역시 책임과 형벌의 적절성의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깊이 고민하여야 할 사안이다. 보호처분의 경우에도 소년원의 수감기간을 늘려 형사처벌과의 차이를 좁혀보자는 견해도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할 때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열악한 소년원의 시설, 교육환경을 대폭 개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소년원의 수감실태가 교도소보다 더 나쁘다는 견해도 많이 있다.

형사처벌은 지은 죄에 대한 인과응보의 측면과 함께 교정을 통한 사회복귀라는 목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행위자가 어린나이일 때는 응보의 측면보다는 교육을 더 강조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타당하다. 집에서 말썽을 피우는 자식을 둔 경우에도 부모가 수시로 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따끔한 매질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함께 울어주는 따뜻함이 있어야 자식을 키울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철없는 어린 녀석들의 방황에 너무 쉽게 회초리만 들려고 하는 것은 피할 일이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여자소년원은 요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심여자중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의 변호사들과 함께 방문한 그곳에서 삼겹살을 구워주며 대화하고 지켜본 아이들은 여느 집의 철없는 딸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고, 저들의 삶이 강팍하여 진 것은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으면서 저 철없는 범죄와 싸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