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요즘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길거리나 공원에서 <논어>의 유명한 구절을 자주 접한다. 중국의 텔레비전에선 공자와 논어를 소개하거나 분석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중국정부가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한지 40년 만에 중국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국민의 경제적 삶도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유럽,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경제발전이 국민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반면, 정신적 빈곤도 동시에 초래하여 각종 사회문제를 불러일으켰듯이 중국사회도 동일한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자살과 이혼의 증가로 인한 가정의 파괴, 청년 실업과 빈곤 문제 등 한국과 정도의 차는 있을지 모르지만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살았던 공자가 중국에서 지금 다시 부각되는데는 이와 같은 중국 사회의 현상과 맞물려 있다.

공자는 지난 2000년 동안 중국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논어는 공자 사후 300년 뒤에 제자들이 스승의 언행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일본의 역사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시가 쓴 <공자>는 공자 제자의 논어 편찬 과정을 소설로 뛰어나게 그려낸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의 공자와 논어에 대한 인식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굴곡이 심했다.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 때 공자문묘(孔子文廟)가 각지에 많이 건립되는 등 공자 숭상이 대단했지만, 이민족이 지배하던 원나라와 청나라 때는 쇠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의 근대와 개혁개방 이전 시기만큼 공자가 푸대접을 받은 적은 없었다.

중국의 신지식인이 일으킨 1910년대의 신문화운동은 중국 근대화가 지체된 원흉으로 유교를 지목, 유교 전통 타파에 나섰다. 유교의 시조인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시기였다. 신문화운동 과정에서 탄생한 중국 공산당은 공산주의 이념과 맞지 않는 유교의 이념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가장 극단적인 유교 혐오와 공자 혐오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발생했다. 유교와 공자는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습, 낡은 습관의 이른바 사구(四舊)의 주요한 타파 대상이었다. 공자의 고향 산둥성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문묘는 홍위병들에 의해 심하게 파괴됐다. 문묘의 초상화, 감실, 편액, 대련 그리고 비석 대부분이 훼손됐다. 마오쩌둥의 정적인 린뱌오 숙청의 일환으로 반공교운동(反孔敎運動)도 일어났다. 공자의 수난시대라 할만하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공자는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했다. 중국정부는 파괴된 취푸의 공자문묘, 공림, 공부 등의 유물을 수리해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중국정부가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세운 '아카데미'를 공자학원으로 이름지었다.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인인 공자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논어가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에 의해 유럽에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17세기였다. 논어는 볼테르, 몽테스키외, 케네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공자와 논어가 한국, 일본, 베트남에 미친 영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자학원은 2004년 서울에 처음으로 설립된 이후 2018년 12월 현재 154개국에 548개가 개설되어 있다. 2010년 개봉된 주윤발 주연의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는 공자를 신격화 한 내용으로 공자를 중국 대중 속에 끌어낸 작품이다.
지난 학기 강의 때 논어의 감명 깊은 구절을 소개하면서 현재의 삶에 적용하는 시도를 했는데 꽤 반응이 좋았다. 중국 유학생 수강생은 초등학교 과정에서 논어의 유명한 구절은 알고 있거나 암기하고 있었다.
일본 각지의 공자문묘에선 성인을 위한 논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고, 각지에선 부모와 자식이 함께 듣는 논어교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공자와 논어는 한반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외국인이자 서적일 것이다. 근대 동양의 지식인은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논어를 들고 읽으면서 지혜의 지침으로 삼았다.
서양의 문화와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면 성경, 동양인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려면 논어가 최고의 책이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중국에서 나온 논어 관련 모든 주(註)를 참고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논어 해설서인 <논어고금주>를 펴내 후대에게 선물했다.
공자와 논어의 올바른 이해는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 키워드인 만큼 미세먼지가 심한 엄동설한에 따뜻한 방에서 논어고금주를 읽어보는 것은 어떠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