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인하대 의대 내과 교수


올해 대학입시가 마무리되고 있다. 입시철이 되면 다른 대학 교수들이 의대는 '상위 학생들이 지원하니 좋겠다'고 인사치레를 한다. 의사가 되는데 학교 성적이 최우선 조건인지, 머리 좋은 학생들이 의대에 몰리는 것이 바람직한지 자신이 없어 그냥 얼버무리고 만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의사들은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든 장기려 박사, 세계 결핵 퇴치에 생을 바친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 아프리카 남수단의 성인 이태석 신부와 같이 소명 의식과 봉사로 평생을 바친 실천적 인물들일 것이다. 의사의 본질적 직무가 이타적인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대는 엘리트주의를 지양하고 졸업생들이 개인 영달보다 사회에 관심을 갖도록 가르쳐야 하고, 사회 소외층이나 뜻을 가진 젊은이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

하버드대 최초 여성 총장인 파우스트(Drew Gilpin Faust) 박사는 취임사에서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라고 말했다. 또 '하버드대가 흑인과 여성, 유태인, 이민자에게 시민권과 평등권 등 기회를 확대시켜온 상징이었으며,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대학이 기능 인력 양성을 뛰어 넘어 사회에 기여하는 인물을 길러내야 하며 소수자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의대도 교육대학처럼 지역적 안배의 필요성이 있다. 인천에는 2개의 의과대학이 있는데 입시계에서는 수도권 의대로 분류되어 입학성적도 높고 서울의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입학한다. 문제는 이들 중 학업을 마치면 서울로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의 대형 병원에 수요가 넘치기 때문이다. 간호대학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지방 의대들은 지역 학생 배려뿐 아니라 졸업 후 인재 확보 차원에서 지역학생을 특별전형으로 별도로 선발한다. 대구, 광주, 부산과 같이 원거리인 경우는 설득력도 있고 실효도 어느 정도 거두고 있으나, 수도권인지 지방인지 불분명한 인천에서는 효과가 모호하고 역차별 논쟁의 위험성도 크다.
직업 적합성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할 부분이 많다. 의사에게 있어 정서적 균형감과 공감 능력은 필수적인데 이것들은 지적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각 대학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면심층면접 등과 같이 인성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서울에는 의대 면접대비 학원들이 기계적으로 연습을 시키는 현실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스럽다. 국가적 이공계 침체 문제도 심각하다. 영재고나 과학고 학생들이 당초 취지대로 이공계에 진학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하면 더없이 고맙겠지만, 취업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에게 대책 없이 일방적인 강요를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각자 원하는 인생을 만족하게 살아가는 상호공존 사회가 아니라, 성적 순으로 생계에 유리한 직업을 선점해나가는 강자선취의 사회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이 같은 현실에서 대학의 의식 있는 교육만이 지역사회에 적합하고 바람직한 의사를 만들 유일한 희망이다. 존 롤스나 마이클 샌델과 같은 정의론(justice) 자들은 개인의 재능은 우연히 얻은 데 불과하기 때문에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의 공유 재산이며, 타고 난 이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스스로 이익을 나누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의 학습으로 인생을 경쟁과 획득의 산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학생들에게 어릴 때부터 형성된 경쟁 강박을 풀어주고 너그럽게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교육의 첫 단계다. 타인의 삶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타인과 자신의 인생에 내재된 우연성과 불평등성을 이해하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해부학과 유전학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요컨대 사람을 의사로 만드는 것보다 의사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올해도 각지에서 인천 의과대학으로 89명의 신입생들이 진학할 것이다. 모두 환영한다. 똑똑하고 재능 있는 학생들이니 자신의 재능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 지역에 나눌 줄 아는 의사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들을 위험한 환자나 감염의 위험이 있는 현장에 물불 가리지 않고 마치 소방관이 불을 피하지 않듯 뛰어드는 이타적인 의료인으로 변모시키는 것은 대학이 할 일이다. 특히 인천의 의과대학들은 각지에서 온 학생들을 인천에 적합한 의료인으로 육성하는 것을 중대한 교육 목표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지역에 적합한 의료인이 세계에 적합한 의료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