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백석대 교수·마인드웰심리상담센터 상담사


"제가 미쳤나봐요, 또 아이를 때리고 화내고 소리 지르고 저도 제 자신이 통제가 안 돼요, 아이가 공부를 안하면 나중에 어떤 인간이 될지 두려워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 해야만 그래도 좋은 직업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제는 좀 머리가 커서 아이가 자기주장을 하면 못된 아이처럼 느껴지고 확 화가 올라와서 아이를 매로 제압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후회하고 아이에게 엄마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아이는 이미 상처를 받았고 저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가고 더 이상 제 말을 듣지 않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어요."

내담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과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보이며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는 아이를 자기 방식대로 통제하고 이끌려고 한다. 때로는 숨막히게 지나친 간섭으로, 때로는 폭군처럼 위협과 협박으로, 잦은 비난과 질책으로, 유기나 방치로 다루고자 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가 있고 엄마의 말과 행동에서 모순도 발견하고 지적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자존심도 상하고 수치심도 느낀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내가 경험한대로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부모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나 아끼고 사랑해주었는지, 존재자체로도 귀여움과 사랑받는 느낌을 충분히 경험하며 자랐는지, 부모에게 귀찮다고 거부당하고 한 번도 사랑스런 눈길조차 받은 적이 없었는지, 비교 당하고, 잦은 질책이나 비난을 받고 자랐다면 "나는 소중한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나 자신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부모에게 억압된 분노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므로 무기력이나 우울로 나타난다. 존재자체만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고 어떻게든 업적을 통해서나 인정받을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담자는 "성장과정에서 엄마는 함께 해준다는 느낌이 없었어. 엄마가 나를 귀찮아하는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엄마랑 함께 있어도 함께 있다는 느낌이 거의 없이 혼자인 느낌이 많았어요. 얼음장 같은 차가운 엄마였어요. 엄마가 옆에 있어도 외롭고 쓸쓸하고 그래서 혼자 노는 법이나 공부하는 것을 터득했지요. 엄마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내가 말하려고도 해도 잘 들어주지 않고, 엄마는 자기 일에 바쁘고 다른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느낌이었어요. 엄마는 그냥 나를 책임져야 할 존재로 돌봐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제공했지만 정작 제 욕구나 감정에는 무심하고 관심도 없어서 전 혼자 모두 해결했어야만 했어요."

성장기에 부모와 정서적인 교감의 결핍은 대인관계에서도 조금만 상처를 받아도 단절해버리고 지나치게 방어적이 돼서 정서적인 깊은 유대관계를 갖기는 어렵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을 획득하지 못하면 자기만족감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내담자는 엄마에게 "엄마도 나 어렸을 때 나에게 그렇게 했잖아요"라고 소리치며 엄마에게 이제야 화를 낸다. 엄마에게 내가 받은 상처를 주고 싶은 것이다. 부모에 대한 분노를 억압하고 건설적인 방법으로 안전하게 풀어내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분노는 다른 곳에서 폭발하게 된다.
<사랑의 매는 없다>를 쓴 엘리스 밀러(Allice Miller)는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으려면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의 고통에 대하여 공감해주고 이해하는 눈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담자는 아직도 과거에 매여있는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차가운 엄마에게 상처받았던 일, 얼음장 같은 엄마가 무서웠던 일, 그럼에도 난 혼자서 잘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의 아이를 만나면서 내담자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자신이 엄마에게 받았던 불공정 대우를 똑같이 내담자는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을 알아차린다. 아이를 보며 화를 내는 것은 곧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고, 자신의 모습을 보는 불편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상담자가 해야 하는 일은 어린아이가 그 당시 차가운 엄마 밑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사랑받기 위하여 안간힘을 써가며 살아야만 했던 내담자의 마음을 꺼내서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그 어린 내면의 아이를 스스로 만나서 성장하도록 양육시켜주는 것이다. 더 사랑해주고 인정받지 못한 것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잘했다고 말해주고, 넌 존재 자체로도 아주 사랑스러운 딸이야라는 엄마의 고백을 대신하여 말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내담자인 엄마는 내면의 불안한 아이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도 배려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자아상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자신감을 가지면서 그 아이가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돼 서서히 자아 분화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