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대에 쏟은 40년 예술혼 … 빛나는 작품으로
▲ "빛과 보리의 만남,맥간공예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상수 장인이 작업을 하고 있다.

 

 

▲ 2016년 염태영 수원시장이 주한중국대사관을 방문해 맥간공예로 만든 국장을 기증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이상수 作 '쌍용도' /사진제공=맥간공예연구소


보릿대 줄기로 맥간공예 만들어

이중섭 작품서 영감 받아서 시작

무수한 연구 … 독보적 기술 보유

중국대사관에 천안문 국장 기증

독일·루마니아 등에 전수 계획도



'장인의 발견'을 시작하면서

경기도 방방곡곡 숨겨져 있는 장인을 찾아라!

오랜 시간 한 길 만을 고집해 온 경기 지역 장인(匠人)들의 외길 인생 스토리.

2019년 올 한 해 인천일보는 경기도 문화원 연합회와 함께 경기 31개 시·군 전역,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수많은 분야의 생활 문화 장인들을 소개한다.




# 수원에서 만난 맥간공예 창시자
눈 부시도록 일렁이는 황금물결, 당장이라도 승천할 듯 신비로운 용 한 마리. 놀랍게도 이들 모두는 보릿대를 재료로 만든 작품이다.

밀짚이나 보릿짚의 줄기를 의미하는 맥간(麥稈)과 예술이 만나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 솜씨, '맥간공예의 창시자'를 수원에서 찾았다. 첫 번째 발견, 이상수 장인을 소개한다.

# 보릿줄기에 반한 청년, 맥간 공예를 창시하다'

맥간공예를 처음 접한 이들은 때때로 나전칠기와 같은 자개 공예와 헛갈려하곤 한다.

얼핏, 결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색 빛깔이 마치 자개와도 닮았지만 이 둘은 속재료부터 엄연히 다르다. 조개껍데기를 재료로 사용하는 자개와 달리 맥간공예는 둥글게 말린 보릿대 줄기를 곱게 편 뒤 미리 그려놓은 도안 위에 모자이크 기법으로 이어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이후 우리 고유의 칠공예 기법으로 광택 과정을 거치면 그제야 맥간공예 작품 하나가 만들어진다. 대개 한 작품당 짧게는 1개월에서 4개월까지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보릿대 특유의 결이 참 인상적입니다.

보릿대를 이어 붙이면 명암층이 생겨나고 빛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미세한 결은 입체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이게 맥간공예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죠."

올해로 40년째 연구에 매진해 온 이상수 장인은 맥간공예를 세계 최초로 창시한 장본인이다.

유년시절, 일찍이 부모를 여읜 이 장인은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남달랐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 탓에 화가가 되고자 했던 그의 꿈들은 희미해져만 갔다. 부모를 잃고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된 이 장인은 한 사찰에서 기거하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미술에 대한 꿈은 포기할 수 없었죠. 항상 생각하고 있던 가치관 중에 하나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보자는 것이었고 당시 이중섭의 담배 은지화를 재료로 만든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담배 은지화를 구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값비싼 재료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장인은 문득 기거하던 사찰 주변으로 한 철 농사가 끝난 뒤 쌓여 있던 보릿대를 발견했다.

추수 후에도 여전히 썩지 않는 보릿대를 신기하게 여긴 이 장인은 이것을 재료로 미술 작업을 시도하게 된다. 이윽고 수차례의 실험과 연구를 거듭해 지금의 맥간공예 기술을 완성했다.

"지금의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오래도록 보존이 가능하도록 기술을 숙련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보릿대를 붙이기 위한 접착제에 대한 고민이 제일 컸었죠. 전봇대에 붙어 있던 스티커가 비가 와도 떨어지지 않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게 됐고 맥간공예 전용 양면 접착테이프를 개발하게 되면서 지금의 작품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맥간공예 창시 후 중국 등 많은 국가에서 시도를 했지만 실상 지금의 우리 기술에는 못 미치고 있을 정도로 독자적인 우리만의 기술입니다."

이 장인이 작년 10월 중국 산둥성에서 선보인 맥간공예 전시회는 현지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압도적인 우리의 맥간공예 기술과 고유의 칠공예 기법은 창시 국가로서의 위엄을 고취시켰다. 또한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았던 지난해 수원시와 이 장인은 주한 중국대사관에 맥간 공예로 그려 낸 천안문 등 중국 국장을 기증하며 다시 한번 우리 기술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당시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가 가장 놀라워한 것 중 하나는 보릿대로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 외에도 캔버스의 색감이었습니다. 누차 안료 배합 실험 과정을 거쳐 뽑아낸 붉은 색에 감명받았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최근 이 장인은 중국 뿐만 아니라 독일, 루마니아 등 수원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세계 도처의 도시에서 맥간공예 작품들을 공개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고 있다.

"독일이나 루마니아 등 유럽에서 수공예품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뜨겁고 동양의 미술작품 수준에 놀라워합니다. 향후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루마니아 현지에서 우리 맥간공예를 전수할 계획입니다."


맥간공예 한 길만을 고집해 온 이상수 장인에게도 남다른 철칙 한 가지가 있다.
"고전에서 맹자가 제시한 입천하지정위(立天下之正位)라는 말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내가 설 자리를 알고 어떤 위기와 시련에도 흔들림 없이 본분대로 굳건히 살아가겠노라' 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장인플러스

# 길상 의미 … 기운 북돋아주는 작품들

이상수 장인의 작품에는 용이나 봉황, 부엉이 등이 주로 등장한다.

이들은 길상의 의미가 담긴 대상들로 장인이 한 땀 한 땀 새겨 넣은 정성이 더해져 좋은 기운을 북돋아주고 있다. 그의 대표작 사신도(160×60.1998년作)는 고구려 벽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용, 봉황, 범, 거북이 사신은 동서남북 사방에 각기 위치해 국방을 수호하는 신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장인은 외세 침략에 맞서 굳건히 나라를 지켰던 사신에 주목하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일월오봉도(160×60.2005년作) 역시 길상 벽사의 의미가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좋은 기운은 들어오게 하고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이 작품을 통해 지친 현대인들의 삶에 위안을 전하고자하는 이 장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