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말고 '처지'를 바꿔라

 

▲ /그림=성미경 '몸색깔을 자주 바꾸는(易) 도마뱀.'

 


소한 무렵이 대한 추위보다 매서워 '소한이 대한 집에 몸 녹이러 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올해 소한(小寒)은 정말로 대한(大寒)네 놀러 갔는지 예년에 비해 춥지 않게 넘어가는 모양새다. 己亥(기해)년 '돼지'를 뜻하는 글자들과 함께 '4자속담' 보기를 청한다.

돼지 시(豕)는 돼지가 네 다리로 서서 꼬리를 치켜든 모양이고, 돼지 돈(豚 )은 집에서 기르는 살찐(月肉·육달 월) 돼지(豕)를 가리킨다. 돼지 해(亥)는 돼지 모양을 본떠 머리(?)와 몸통(女) 다리와 꼬리(人)까지 완벽하게 그렸다. 여자(女)와 남자(人)를 표현한 글자로서 남녀가 애정에 힘쓰는 모습이다. 따라서 '애정이 좋은 부부'를 의미한다. 자식을 많이 낳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었겠는가?

집 가(家) 를 두고 한자가 한민족의 글자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집(?) 안에서 돼지(豕)를 키우는 민족은 한민족 밖에 없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뒷간 혼(?)'을 제시한다. 우리(口) 안에 돼지(豕)를 가두어 놓고 기르는 '통시' 이른바 제주도 똥돼지를 뜻한다.

'화돈현돈(火豚懸豚) 그슬린 돼지가 달아맨 돼지 타령한다'는 직화구이 바비큐판에서 그슬린 돼지가 푸주간에 매달린 돼지를 보고 잘못한다고 꾸짖는 것인데, 어려운 처지에서 오히려 자기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흉보는 어리석은 행동을 비유한다. 북한에서는 이를 '달아맨 돼지가 누운 돼지 나무란다'라는 속담으로 전해진다.

▲易 역 [ 바꾸다(역) / 쉽다(이) ]

1. 易(역)은 도마뱀을 그린 글자다. 도마뱀은 몸 색깔을 자주 바꾸며(易역) 자기 꼬리를 쉽게(易이) 자르고 도망간다.

2. 易은 日(해 일)과 勿(말 물)이 합쳐진 글자다. 여기에서 勿(물)은 月(월)이 변한 모습이니, 易(역)은 해와 달이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地 지 [ 땅 / 처지(處地) ]

/전성배 한문학자

1. 地는 남성을 상징하는 土(토)와 여성을 상징하는 也(야)가 만나 만물을 토해낸다.

2. 地는 넓고 큰 땅이며 나라의 영토와 논밭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본바탕'과 '처지'라는 의미가 나왔다. '처지'란 처하여 있는 형편이나 사정을 말하며, 지위나 신분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같은 말로는 '생각. 관점. 상황' 등이 있다.

여당은 야당 처지를 야당은 여당 처지를. 노동자는 사용자 처지를 사용자는 노동자 처지를, 그런데 이렇게 좋은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방송이나 생활에서 일제용어인 입장(立場)이라는 말로 도배하고 있다.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단어다.

아집과 불통으로 굳어진 목 때문에 돼지는 똑바로 서서 하늘을 보지 못한다. 그러면 언제 보는가? 돼지가 자빠져야 비로소 볼 수 있다. 어떻게든 돈과 표만 모으면 된다는 욕심으로 눈앞에 보이는 먹이만 찾지 말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자.

정치인들 특히 당선된 자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 있다. 들을 지어다. 모가지 잘린 돼지머리 처지가 되어 남의 차례상에서 하늘을 보며 멋쩍게 웃게 될 것이다. '돈(money)'만 욕심내는 돈(豚)을 꾸짖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