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2. 강화 의병 운동
[3·1운동 100주년] 2. 강화 의병 운동
  • 이주영
  • 승인 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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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건 오직 독립, 나라 위해 전쟁터로 나섰다
▲ 성재 이동휘(1873-1935)가 육군참령으로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를 지휘할 무렵에 부대간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앞줄 중앙이 이동휘 참령(參領, 현 소령)이며, 조상석 정위(正慰, 현 대위), 홍우섭 정교(正校, 현 상사), 박제언 참위(參慰, 현 소위). 유홍준 참위, 최영순 참위, 김정배 정교 등이 함께 있다.
▲ 성재 이동휘(1873-1935)가 육군참령으로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를 지휘할 무렵에 부대간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앞줄 중앙이 이동휘 참령(參領, 현 소령)이며, 조상석 정위(正慰, 현 대위), 홍우섭 정교(正校, 현 상사), 박제언 참위(參慰, 현 소위). 유홍준 참위, 최영순 참위, 김정배 정교 등이 함께 있다.
▲ 이동휘 강화진위대 참령(우)과 황병길 독립운동가
▲ 이동휘 강화진위대 참령(우)과 황병길 독립운동가
▲ 견자산에 위치한 강화진위대 연무당 예전 모습,
▲ 견자산에 위치한 강화진위대 연무당 예전 모습,
▲ 체포된 이능권 시위대 장교.
▲ 체포된 이능권 시위대 장교.

 

 

독립운동 성지 강화, 한반도 관문·요충지

강화진위대, 1907년 군 해산시 의병운동


日군 습격 무기고 털고·순사주재소 공격



임시정부 국무총리 지낸 참령 이동휘,

정예부대 육성 … 고종 퇴위 후 사라져

연무당 터서 집회열고 독립정신 호소



양사면 산이포·송해면 하도리·전등사

죽실방죽 등 강화의병지 6곳 활동 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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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구한말 독립의지가 뿌리내린 곳으로 일제로부터 대한제국이 짓밟히는 것에 항거했다.

그 곳에는 잊지말아야 할 독립운동가와 함께 강화 민중의 투철한 독립의지가 점철됐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서쪽과 남쪽은 경기만에 열려 있고, 북쪽으로는 한강 및 예성강 하구를 사이에 두고 북한 개풍군·연백군과 마주하며, 동쪽으로는 염하(鹽河)를 끼고 김포반도와 마주한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관문이자 요충지로, 외세가 침략의 야욕을 가장 먼저 드러낸 곳이 강화이다.

이 곳은 1906년 강화부에서 강화군으로 바뀌었다. 1914년 일제의 지방제도 개편으로 길상면·하점면 등 13개 면으로 조정됐다. 1995년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과 함께 인천광역시와 통합됐다. 강화 의병운동은 가열찼다. 대자유 이동휘의 자취가 서려 강화 민중이 독립 의지를 펼치다 일제로부터 핍박 받았다.


▲견자산 강화진위대 주둔지

1907년 군대 해산시 강화진위대가 의병운동을 일으킨 장소.

- 당시 강화군 부내면(현 강화읍 관청리 산22)인 곳으로 1907년 8월8일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강화진위대원들은 해산 명령에 불응하여 친일군수 정경수를 처단했다. 강화진위대원들의 봉기에 주민들도 합세해 800여 명이 봉기했다. 친위대원과 주민들은 무기고를 부수어 총기와 탄약을 탈취해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일본군 순사주재소를 습격했다.

이에 진위대 해산을 위해 용산에 주둔했던 일본군이 출동했다. 봉기군은 갑곶 인근 선착장 연안에 50여 명이 매복해 총격을 가해 일본군 6명을 사살하고 5명을 부상시켰다. 그러나 화력에 밀려 읍내로 들어간 봉기군은 연기우·지홍윤·유명규 등의 지휘 아래 해서(海西)지방으로 탈주했다. 이후 유명규는 통진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돼 총살당했다.

- 견자산 강화진위대 주둔지는 강화 군수 정경수 등 일진회원 처단과 더불어 일본군 무기고를 부수고 총기와 탄약을 꺼내 지방민과 함께 약 800명이 의병을 일으켜 일본순사주재소를 습격한 항거의 현장이다. 하지만 의병의 발자취를 찾을 수 없다. 모든 게 사라진 산기슭에는 주택이 들어서 있다. 기념비 건립과 의병항쟁 안내 자료 발간 필요성이 요구된다.

강화 의병운동의 단초인 강화진위대는 1000여 병력을 보유한 대부대였다. 강화도가 수도 한양으로 통하는 유일한 해로를 지키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당시 군 지휘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참령(參領·대대장) 이동휘(1873~1935)로 근대식 군사시설과 양총 등 신식무기로 무장한 정예부대로 성장했다. 그러나 일제가 고종 퇴위후 군대를 해산시키며 강화진위대도 사라졌다.

 

▲연무당 터

1907년 전 강화진위대장 이동휘가 군중집회를 열고 독립정신을 고양한 장소.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비운의 곳이다.

- 연무당(練武堂)은 1870년(고종 7)에 건립되어 무관병사를 열병하던 곳으로, 1876년에는 일본과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역사의 현장이다. 조선의 첫 근대식 조약이지만 불평등조약으로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이다. 1907년 이동휘는 고종의 강제퇴위 저지투쟁과 매국대신 처단을 고심했다.

그러던 중 7월19일과 20일 서울에서 군인·민중이 일제히 봉기해 반일시위를 벌이자 자신이 대장으로 있는 강화도로 급히 와 7월24일과 26일 연무당에서 기독교인 김동수·허성경·김남수 등과 군중집회를 열었다. 이동휘는 일본에 대항해 결사 항전하자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대한자강회 총회를 개최했다.

이후 7월30일 정족산성 전등사에서 김동수와 허성경 등의 기독교인을 비롯해 해산군인 400여 명을 모아 합성친목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반일집회를 열어 일반 군중을 고무시켰다. 김동수 3형제는 이후 일본군에 잡혀 압송 중 더러미에서 살해됐다.

- 이동휘가 강화도에서 활동하던 시절과 관련된 곳이지만 현재 건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러나 연무당의 강화의병운동 의지가 더해진 표지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주요 강화 의병지

강화 의병지는 크게 6곳이다. 이중 양사면 산이포 의병전투지와 송해면 하도리 의병활동지, 전등사 의병전투지, 죽실방죽 의병전투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양사면 산이포 의병전투지와 전등사 의병전투지는 1907~1908년에 걸쳐 의병이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던 곳이고, 송해면 하도리 의병활동지는 의병 박계석과 고부성이 친일파를 처단한 장소이다.

죽실방죽에서는 1908년 대동창의진 대장 이능권이 일본 헌병과 전투를 벌였다.

- 양사면 산이포 의병전투지에서는 1907년 해산된 강화진위대의 군인들이 의병으로 활동하던 중 약 30명이 1908년 4월, 6월, 8월 산이포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1908년 4월15일 총기를 휴대한 의병 약 30명이 배로 산이포에 들어와 활동하고, 1908년 6월20일에는 일본 풍덕 분견대와 교전해 의병 7명이 전사했다.

전등사 의병전투지는 부내면 국정리 출신인 이능권의 활동이 빛난 곳이다. 이능권은 시위대 장교였으며 군대 해산 후 낙향해 주민들을 모아 대동창의단을 조직했다. 친일파·밀정 등을 처단하고, 강화 전역에서 군자금 모집활동 중 1908년 10월 하순 용산에서 출동한 일본군과 정족산 전등사에서 일주일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

1908년 의병의 항전이 이어지자 일본군은 그해 10월 용산주둔 일본군 6사단 예하의 13연대 70여 명의 정규 병력을 강화도로 투입했다. 10월30~31일 일본군 공세가 거셌지만 전등사의 이능권부대는 화력의 열세에도 일본군을 격퇴해 승리했다. 읍내로 철수한 일본군은 11월1일 재차 전등사에 출진했지만 이미 의병은 자취를 감췄다.

송해면 하도리 의병활동지에서는 1908년 7월 박계석과 고부성이 황재호·김기섭과 같이 서문 밖 방골에서 친일파를 처단한 곳이다. 그러나 이들은 거사 직후 출동한 헌병에 의해 체포됐고, 1908년 11월 박계석은 인천 압송 중 하도리 부근 야산에서 사살됐고, 고부성은 갑곶 염하에서 총살됐다.

죽실방죽은 길상면 선두리와 화도면 덕포리 사이에 있는 방죽으로, 일본군 30여 명의 다리를 잘라 방죽에 던진 전투지라고 구전으로 전하는 곳이다. 죽실방죽은 항일의 뜻을 품은 족실방죽으로 변음돼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 양사면 산이포 의병전투지는 물론 죽실방죽 의병전투지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고, 송해면 하도리 의병활동지 역시 기념할 근거가 없다. 전등사 의병전투지는 전등사의 문화재적 가치가 있지만 관련 의병 활동을 기념할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 자료제공=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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