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철도는 근대문명의 상징이다. 19세기 말 철도의 출현은 경이로웠다. 1896년 7월 독립신문은 경성~인천을 잇는 최초의 철도 부설로 '여러 천 명 벌어먹을 것'이라 썼다. 더불어 '농·상민이 흥왕할 터이요, 조선 사람들에게 철도는 큰 학교가 될 지라' 내다봤다. 요즘 말로 풀면 노동시장 창출, 개화의 증거, 심지어 문명의 상징쯤 되겠다.
하나 이는 개화파의 바람이었을 뿐, 대한제국 철도 역사는 비극적이다. 경인선은 사실상 일제의 한반도 자원 수탈의 강력한 수단이었다. 일본이 러일전쟁 기간 부설한 1000㎞ 경부선과 경의선 철도도 마찬가지. 한반도를 관통해 대륙으로 나아가는 철길은 일본에 러일전쟁 승리를 안겼다. 단선(單線)에다 곳곳이 끊긴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견줘 병력과 물자 수송이 월등했으니 말이다.

이렇듯 한반도의 '경이로운 문명의 상징'이자 '개화의 증거'는 태생부터 비극적 운명을 감당했고,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해방이후 이어진 한반도 분단으로 경의선 운행 거리는 485.7㎞에서 56.1㎞로 줄어 동네 교통수단으로 전락했다. 신의주에서 압록강 건너 모스크바를 지나, 파리와 런던까지 달리자는 철마(鐵馬)의 원대한 꿈은 수십 년 세월 여전히 꿈일 뿐이다.

물론 철마의 꿈을 이루기 위한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김대중 정부는 2006년 남북 화해 근간은 남북 종단 철도 운행이라 했다. 뒤이은 노무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서 경협 활성화 사업으로 철도경협을 앞세웠다. 경의선·강원선 시범운행까지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보수정권 역시 비슷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또한 비핵화와 남북경협을 위한 철도사띠을 국정의제로 내세웠건만 달라진 건 없었다.
이러한 시도나마 줄기차게 이어져 왔기 때문일까.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철도사업이 제법 활기를 띠고 있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은 사업을 끌어가는 동력이다. 남북 철도노동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기대치를 높여가는 요소다.

삼면이 바다인 데다 북쪽까지 막혀 피차 오도 가도 못하는 섬처럼 살아온 60여년. 남북 간 교류협력 사업 선봉에 철도가 앞장 서 견인차 노릇을 제대로 해낸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