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논설위원

 

중학교 겨울방학이었으니 40년전쯤이다. 도서관 간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와 친구 2~3명과 가끔 서울 나들이를 하곤 했다. 동인천역에서 개통된지 얼마 안 된 수도권 전철을 타고 서울을 찾아 온 종일 백화점과 지하상가를 구경하다 저녁 무렵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쇼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말 그대로 백화점과 지하상가 자체를 구경하고 다녔다. 인천에 백화점이 없던 시절 처음 접한 영등포 신세계백화점은 별천지였다. 백화점 내 휘황찬란한 실내 조명은 몇번을 가도 우리를 기죽게 만들었다.

처음 타보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는 재미있는 놀이기구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걸 누나들의 눈총에 몇번 타고 아쉬움을 남긴채 다른 즐거움을 찾아야 했다. 추억속에나 남아있을 장면이지만 당시 백화점 엘리베이터에는 여자 안내원들이 타서 고객들이 내릴 층의 버튼을 눌러주고 매장을 미리 설명해 주곤 했다.
어릴적 처음 접해본 백화점은 신천지였다. 지금은 인천에도 백화점이 여러곳 들어서 있다. 하지만 추억을 간직한 역사 깊은 향토백화점은 한 곳도 없다. 모두가 대기업 백화점이다.

1990년대 중· 후반까지만 해도 인천의 백화점업계는 고만고만한 향토백화점들이 주류를 이뤘다. 1984년 남동구 간석동에 문을 연 인천 최초의 백화점인 옛 희망백화점(현 올리브아울렛)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쇼핑문화를 경험하게 해 주면서 지역의 향토백화점으로 성장했다. 또 1989년에는 경인전철 동인천역에 민자역사 쇼핑센터로 인천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이들 향토 백화점은 지역 중소기업과 공생하면서 한때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쟁력이 약화되고 대기업 백화점들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만 했다. 주머니 가벼운 서민과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향토백화점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