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진 인천대 정치외교 4학년


또 터졌다. 한차례 땅콩과 물벼락이라는 큰 폭풍이 지나가 조금 조용해졌나 싶었는데, 다시 '갑들의 횡포'가 줄줄이 굴비 엮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의 직원 폭행 영상이 세간에 공개됐다. 그가 폭력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본인을 사칭한 아이디로 장난스러운 댓글을 달았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그 '유치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무릎 꿇린 채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해당 동영상은, 다른 갑질 동영상과는 달리 누군가 양 회장을 신고하기 위해 몰래 찍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양 회장 본인이 기념으로 갖고 있겠다며 직접 지시해 찍어놓은 동영상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기념'하겠다는 것인지 양 회장의 의중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다. 하지만 예상컨대 그는 사무실 속 자신의 폭력을 바라보는 수십 개 눈동자에게 선전포고했으리라. '너희도 나한테 기어오르면 이렇게 된다'고. 그의 모습을 이어받아 보네르아띠 황준호 대표 등 대한민국의 갑들은 연일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갈아치웠다.

하지만 '갑질'이란 것은 비단 대기업 총수나 재벌만의 특권으로 볼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하루에도 몇 번씩 갑으로 작용한다. 대학의 선배가, 셋방을 놓은 집주인이, 하다 못해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간 손님까지도 누군가에게는 갑일 수 있다.
조현아 부사장이 '땅콩매뉴얼'을 인지하지 못한 승무원에 화가 나 회항을 지시한 것처럼, 우리는 타인 혹은 자신의 실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양 회장이 자신을 욕되게 한 직원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주제'도 모르고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손가락질한다. 참으로 갑갑(甲甲)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7년 국가직 9급 공무원 지원자 수는 총 22만8천368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다 인원으로,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의 공무원 열풍을 바로 보여준다. 미래를 생각하면 이러한 현상은 결코 긍정적이지 못하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젊은이들이 사라지면 나라의 발전 역시 더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수많은 청년을 노량진으로 등 떠민 게 무엇이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2014년 경기경개발연구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성인 46.0%가 '우리 사회는 한번 실패하면 낙오자로 인식된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사회는 우리에게 단 한 번의 실패조차 용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갑의 사회' 속에서 철저히 '을의 위치'에 놓여 있는 청년들은 사회에 기어오르지 않기 위해 창업과 벤처 등의 새로운 도전을 외면했다. 실패확률이 높은 도전은 낙오자로 가는 지름길이 될 테니 말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의 '이생망', 혐오스러운 인생이라는 '혐생', 대한민국이 지옥같다는 '헬조선'까지. 현재 청춘들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삶에 대한 고단함이 표출되고 있다. 'N포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 배추 셀 때나 쓴다는 '포기'라는 단어는 지금 청년들에게서 '몇 포기'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사용된다. 그러니 이들에게 실패하지 않기 위해 포기하는 법을 가르친 '갑의 사회'는 변해야 한다. 녀석들이 감히 이 갑갑한 세상을 기어오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