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 팬암 항공사는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굴지의 항공사였다. 초기 항공산업의 선구자이자 항공계의 제국 같은 역할을 했던 회사로 미국을 대표하던 항공회사이자 문화적 아이콘 같은 브랜드였다. 팬 아메리칸항공을 간단히 팬암이라고 불렀는데 필자가 대학 졸업반 때 미국 정부초청으로 태평양을 횡단하면서 당시로서는 최신기종이었던 보잉707 젯트여객기에 처음 탑승하여 푸짐한 기내식을 받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팬암은 2차 세계전이 끝나고 1980년도까지 여객과 화물 부문에서 세계 1위였다. 미국 최초로 국제선을 운항하고 세계 최초로 태평양과 대서양 정기노선을 개척했는가 하면 세계일주 항공편을 만들기도 했다. 팬암의 사세가 기울기 시작한 것은 대형기 보잉747 때문이었다. 보잉707의 출현으로 세계 최고의 항공회사로 전 세계를 커버하는 노선망을 확보한 후 이어서 나온 대형여객기 747을 많은 노선에 투입하면서 수지가 악화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카터 대통령 시절에 시행된 항공자유화에 따라 IATA(국제항공운수협회)의 규제와 항공요금 담합이 끝나고 자유경쟁이 시작되면서 초대형 항공사로 성장한 팬암은 직격탄을 맞았다. 항공노선의 개방(오픈스카이) 정책으로 수익성이 좋은 노선에는 여러 항공사들이 몰려들고 항공 요금의 자유화도 치명적이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취항하던 노스웨스트항공이나 미국 국내선의 선두를 달리던 이스턴항공도 그때 문을 닫았다. ▶유럽에서도 항공자유화에 따라 작은 나라들의 항공사들이 폐업의 길을 걸었다. 스위스에어와 사베나(벨기에)는 문을 닫았고 KLM(네덜란드)은 에어프랑스에 합병되었다. 대형 항공회사들의 틈새에서 저가항공사들의 비약적 성장은 21세기 항공산업의 또 다른 현상이다. 저가항공사 이지제트는 비즈니스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여 자국의 영국항공(BA)뿐 아니라 에어프랑스도 위협하고 있다. ▶내년부터 우리나라 정부는 항공운송 사업자의 면허기준을 완화하여 저가항공사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라는 소식이다. 현재도 6개나 있는 저가항공사들이 근년에 수익이 좋아졌다고 항공회사를 계속 늘리겠다는 발상인 것 같다. 저가항공사들이 앞으로도 계속 수익성이 좋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생명과 직결되고 안전이 필수적인 항공회사를 무작정 늘려 어떻게 관리 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