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고 경사롭게"
▲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사람'. /그림=김종하

 

한자와 한글은 새의 양날개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민족의 글자다. 한자(漢子)가 아닌 한자(韓字)로 한 이유다. 하지만 한자를 배척하고 한자 사용을 안하다보면 역사, 문화를 잃게 된다. 지금이라도 한자를 되살리고 배워, 수준높은 문화생활을 영위하길 바란다. 한자를 다시 찾자는 의미로 매주 목요일에 이 칼럼을 연재한다.

2019년 기해(己亥)년 돼지띠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다른 '돼지해' 보다도 특별하다. 그냥 보통 돼지가 아니라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황금돼지 해'이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온통 번쩍번쩍 빛나는 누런 황금으로 된 '돼지'들이 넘쳐난다. 사실 지난 2018년 무술(戊戌)년 역시 '황금개띠'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재물'에 대해 목말라 했다. 왜 이렇게 '돈'에 열광하는가.

천간(天干)에서 戊(무)와 己(기)는 '땅'에 속하며 '노란색'을 뜻한다. 이것을 놓치지 않고 사람들은 누런 '황금'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것은 '돈'과 '재물'의 상징인데, 바로 최고의 '복(福)'이 되었다. '삼가 축하하다'는 謹賀(근하)라는 새해 인사말에서도 한민족의 성품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마음이다. 여기에서 謹(근)은 돌아간 사람을 '삼가 슬퍼하다'는 謹弔(근조)에도 쓰이는데, 글자의 유래가 흥미롭다.

▲謹 근 [ 삼가다 / 자성(自省)하다 / 금(禁)하다 ]

1. 菫(근)은 '노란 진흙'이다. 황무지를 뜻하기도 한다. 이 글자를 더 작게 깨뜨리면 革(새로울 혁)과 土(흙 토)로 분리된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를 새롭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자.

2. 갑골문에 보이는 菫(근)의 원래 뜻은 기우제를 주관하는 '무당'을 말한다. 비를 내리게 한 무당은 평안하였으나, 그렇지 못한 자는 불(火화)에 태워 죽임을 당했다. 가뭄이 깊어지면 논밭이 말라 진흙이 되었으니까. 고문서에서는 불에 탄 사람의 일그러진 얼굴(卄) 몸통(口) 그리고 팔다리(夫)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글자가
熯(불사를 한)이다.

/전성배(호는 學子·성균관대학교 중문학과 졸업·한문학자·칼럼리스트·민족언어연구원장)

 

3. 謹(삼갈 근)은 言(말씀 언)과 菫(진흙 근)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삼가다'는 것은 말과 행동을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을 삼간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차라리 입술(言)에 진흙(菫)을 발라 아예 말 한마디 못하게 막는 것이 어떻겠는가?

 

▲賀 하 [ 하례(賀禮)하다 / 칭찬하여 기리다 / 경사롭다 ]

1. 賀(하)는 加(더할 가)와 '돈'이나 '재물'을 뜻하는 貝(조개 패)가 합쳐졌다. 이 글자 역시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의미를 담았다. 가정이나 마을에 경사가 생기면 백성들은 서로 물건(貝)을 보태어(加) 주며 축하해 준 것이다.

2. 賀(하)는 단순히 '물질' 만으로 축하하는 것이 아니다. 강물이 불어나듯 정신적인 부(富)를 축적함을 기리는 것이다. 바른 생각으로 얻은 '돈'이 진정으로 가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돼지가 되어 '돈'으로만 이루어진 '福'을 내려달라고 그렇게 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국 근하신년(謹賀新年)은 낮은 몸가짐과 겸손한 마음을 담아 기쁘고 즐겁게 새로운 해를 맞이하자는 뜻의 인사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