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

상상해보자. 의사가 환자의 동의 없이 레이저를 사용하여 치료를 하고, 그로 인해 얼굴에 화상을 입게 되었다거나 혹은 불임시술 시 의사가 환자에게 특별한 고지 없이 다른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환자의 난소와 나팔관을 적출했다면 과연 어떨 것 같은가? 두 경우 모두 환자의 알 권리를 처참히 무시한 행위에 해당하는 일종의 의료 사기로 인한 피해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발생되었던 두 가지 경우에 각각 환자가 받았던 배상액은 실로 큰 차이가 있다.

첫 번째 사례는 미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의사는 환자에게 25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비해 두 번째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으로 의사가 환자를 기망한 것에 대한 환자의 정신적 충격을 고려하여 환자에게 위자료 6000만원을 지불하는 것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두 사례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단순 비교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의 심각성을 얼추 짐작하여 배상액만을 고려해 봤을 때에도 그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나라에는 없고 미국에는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운영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여름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일 보도되었던 소위 'BMW 불자동차 사태'에 대한 조사결과가 얼마 전에 발표됐다. 가뜩이나 뜨거운 여름에 연신 불타는 자동차 사고를 접하게 하여, 우리 모두를 더 덥게 만들었던 논란의 BMW 사건이 결국 검찰 고발과 과징금 112억원으로 조치됐다는 것이다. BMW사는 차량의 EGR 시스템의 설계 결함이 차량 화재와 연관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였거나 결함 있는 차량에 대한 늑장대응및 리콜 축소 의혹을 사고 있다. 즉 독일 본사에서는 해당 EGR 쿨러 균열 문제가 화재위험과 연관성이 있음을 인지하여 지난 2015년부터 TF팀을 구성해 대응방안을 모색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해당결함을 지난해 7월에 인지했다는 거짓 분석 자료를 정부에 제출하는 등의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 실로 국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 역시도 글로벌 자동차 회사다운 스케일이었다.

그러나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이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무모한 갑질을 행한 BMW사를 강력히 규제할 수단이 현재 우리한테는 없다는 것이다. BMW 코리아에 부과된 과징금 112억원은 고작 매출의 1%정도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만약 악의적으로 피해를 발생시킨 가해자에게 징벌적으로 실제 손해액보다 많은 배상액을 합법적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었다면 BMW의 불자동차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적어도 현재 매출액 1%에 부과된 과징금을 3%대로만 올려도 그 금액이 3146억원에 이른다고 하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적용을 통한 수천억 원의 과징금은 곧 '처벌'의 의미를 가지면서 동시에 불법행위를 직접적으로 방지하는 '억제'의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소비자피해는 사업자가 당연히 기울여야 하는 안전의 의무를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기업은 경제주체로서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상품의 결함을 사전에 알았거나 이를 제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을 절감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인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과실을 범하게 된다. 따라서 소비자가 입은 실제 손해에 대해서만 보상을 해주는 현재 우리나라의 손해보상제도는 불법행위를 한 사업자의 재산상의 손실 없이도 얼마든지 운영될 수 있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즉 소비자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해 사업자가 실손배상을 해줬다 하더라도 사업자의 잠재이익을 소비자에게 반환한 것으로 이는 일종의 등가배상이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이 없다면 또 다른 BMW 사태는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 것은 고대부터였다. 가축을 훔치면 그 값의 10배를 되갚아줘야 한다는 함무라비 법전부터 절도죄에 대해 객체인 재물의 12배를 배상토록 했던 부여와 고구려의 일책십이법(一責十二法)의 내용 역시 오늘날 우리나라의 등가법칙을 통한 손해배상이 아닌 배수적인 손해배상을 인정해왔던 것이다.
이미 사업자의 악의적인 불법성이 도를 넘었는데, 현재의 제도가 위협적이 아니라고 해서 '이번에도 괜찮겠지' 라며 그침을 알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리고 그침을 아는 지지(知止)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멈춤을 실행하는 지지(止止)를 행할 수 있도록 최우선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것에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