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서울대 예술과학센터 선임연구원

지난 해 사회적인 관심을 일으킨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쟁은 해가 바뀌어도 논의가 쉬 식지 않고 있습니다. 의무 복무가 교도소에 36개월 갇혀 지낸다는 의미와 같다는 것인가 하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더군요. 소수자에 대한 인간 존중이 없이 쉽게 형벌을 가하는 식의 해법을 내놓는 것이 국민들로부터 얼마만한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필자는 최근에 이스라엘 군대가 어떻게 강해졌는지 그리고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어떠했는지를 담은 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사회성은 떨어지지만 고도로 발달된 집중력을 통하여 위성사진을 분석하는 자폐증 병사로 구성된 부대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베두인(일정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함)으로 구성된 특수 정찰부대의 창단과 히브리어를 모르는 베두인들에게 군대에서 실시한 교육을 통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과학 영재들을 선발하여 최고의 국가 교육기관에서 무상 교육을 받으며 연구와 작전을 병행하게 하고, 제대 후 세계적인 사업가로 육성하는 전략 등 군대 복무를 통하여 사회성을 키우고 오히려 자기 능력을 발휘하게끔 한다니 그 기발한 아이디어 발상이 놀라웠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적재적소에 잘 적용하여 사회적 문제를 전문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지금의 군사강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제도를 제안하고 만든 사람들이 군인이 아닌 학자, 전역한 군인 등 민간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다소 실험적인 제안에 귀를 기울이는 군대의 조직 문화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따금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우리나라 산업 기능요원 복무의 파행, 군복무는 전문성을 살릴 수 없다는 이런저런 이유로 복무를 피하는 사례 등을 생각해보면 이스라엘의 강한 군대 이야기는 우리가 깊게 곱씹어봐야 하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전문적인 군대 복무 해결방식은 접근부터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문제를 여론에 밀려 비전문적이고 세련되지 못하게 해결하는 광경을 가끔 목격합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문화기관에서도 비전문적으로 공간을 경영하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문화시설 기관 및 단체의 관리책임자로 예술분야의 경영 전문가가 아닌 전직 자치단체의 행정관료 출신이 임명되는 것입니다. 예술경영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는 벌써 30년이 가까워옵니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가 배출되었고, 이들 전문 인력들은 문화기관과 예술단체 현장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 전문가들은 비전문가 기관장들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부족한 경험과 식견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기관의 설립 목적과 비전과는 거리가 먼 지시와 사업 추진으로 문화 기관과 단체의 활동을 종종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비전문가 기관장들의 임명은 결과적으로 단체와 기관의 발전을 저해하고 직원들의 근무 의욕을 저하시키며, 나아가 건실한 지역 문화 환경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술은 자유스러움을 추구하는 반면 행정은 분류하고 틀에 가두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관료 출신 관리책임자는 예술단체의 자유스러운 표현과 아름다움의 가치 추구를 제한하고 심지어 지방 정권에 비판적인 성향의 예술가와 단체의 활동 지원에 간섭과 차등을 두는 등 폐습을 낳기도 합니다.

문화 예술 활동에 있어서 비전문성으로 문제가 되는 또 다른 분야는 문화 공간 운영입니다, 1988년 이후 우리나라는 주민들의 생활 복지 향상을 위해 다양한 문화시설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동안 건립된 문화시설은 건립에 치중하여 효율적이고 자율적인 운영과 시설관리는 전혀 전문적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문화시설의 안전관리는 문화공간의 특성과 환경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래 들어 건립된 지 30년이 넘은 문화 공간들은 리모델링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화공간의 리모델링 사업은 중앙과 광역 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실시되고 있는데, 이들 국가와 광역자치단체 그리고 사업의 실제 주체인 기초자치단체의 유기적인 협력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합니다. 엉뚱하게 공연 단체에서 사용하지 않는 시설을 개보수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혈세가 낭비됩니다. 지금도 다수의 문화 공간 지하 창고에 가면 건립초기에 구입 했지만 아직까지 사용하지 않은 많은 조명기구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조명 시스템이 변경되어서 사용할 기회가 전혀 없는 기구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문화 공간 운영의 비전문성을 입에 담는 것이 금기시 된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최소한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문화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