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실장

 

찡그리거나 우는 모습의 돼지를 본 적이 있는가. 저돌적이고 왕성한 식욕의 상징처럼 마주치는 돼지 얼굴은 만족감, 포만감에 젖은 웃는 표정들이다. 고사상(告祀床)에 오른 슬픈 돼지머리를 상상하기란 웃기는 일이다. 돼지 떡케익이 상품화되고, 흐드러진 입 꼬리와 반달처럼 구부러진 눈가의 미소가 그려진다. 하지만 돼지 웃음을 들어본 적은 없다. 웃음은 오직 인간 고유의 특권으로서 생활의 속박을 깨는 순간의 오아시스로 작용한다. 물론 냉소(冷笑), 고소(苦笑), 폭소(爆笑) 등 비극과 희극이 혼재한다. 유쾌한 웃음이 있는 반면 허탈한 웃음도 있기 마련이다.

웃음은 감정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의미 깊은 행동임에 분명하다. 왜 웃을까. 갑자기 긴장이 풀려 우스꽝스럽다고 느끼거나 권위와 체면이 무너졌을 때의 쾌감이다. 돌연한 승리의 감정을 동반할 때도 웃는다. 또 웃음은 전이성이 높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곧잘 웃음 녹음소리를 동원해 청중의 흥미를 돋운다. '황금' 수식어가 붙은 돼지띠, 기해년(己亥年)이 밝았다. 사회 곳곳에 재미와 재치를 담은 재담과 웃음이 넘쳐야 한다.

예부터 돼지는 제전의 희생이었고, 돼지머리는 소중한 제물로 쓰인 신성한 존재였다. 욕심이 많아 탐욕을 경계하는 삼장법사의 제자 저팔계로 등장하고, 오늘날 만화·영상을 주무르는 스타 캐릭터다. 천성이 착하고, 식성과 재복을 지닌 다재다능 동물이다. 복권당첨은 돼지꿈을 꾼 사람들이 가장 많다. 돼지는 예나 지금이나 행운의 상징이다. 돼지 요리는 베스트 메뉴다. 돼지머리고기와 막걸리, 삼겹살에 소주는 자연스러운 식단 구조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돼지고기 음식은 10명 중 6명이 선택한 삼결살이다. 돈까스, 족발, 보쌈, 돼지갈비찜 등의 순이다.

축산 돼지는 200일 가량 300㎏ 정도의 옥수수 곡물사료를 먹고 자라 110㎏ 정도가 되면 도축장에 끌려가 소시지, 햄 등으로 상품화된다. 어미돼지가 한 번 출산에 10마리 정도를 낳고 평생 80마리 정도를 출산하는 다산의 동물이지만 축산공장의 새끼돼지 일생은 200일 내외다. 죽어서 미소를 남기는 돼지의 일생이 한편 가련하다.

웃을 줄 아는 동물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웃음소리가 흔치 않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일소일소(一笑一少)다.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웃을 확률은 더 높다. 2019년, 재복을 몰고 올 돼지 해, 파안대소(破顔大笑), 박장대소(拍掌大笑), 포복절도(抱腹絶倒)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