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철 

명랑한
당신 웃음 소리가
찢어버렸어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던 것들을
찢어부수고 보여주었어
하늘을
푸른 하늘을
시간과 공간이
바람처럼 떠도는
푸르른 하늘로 된 세상을
열어주었어
한 번의 명랑한
당신의 웃음 소리가
찢어주었어
내 생의 가면을



세상의 웃음소리가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무표정한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리고 세모의 쓸쓸한 거리를 걷고 있을 뿐, 쾌청하고 명랑한 웃음소리를 들어볼 수 없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오늘도 여러 단체에서 기득권을 찾기 위해 머리띠를 두르고 깃발을 높이 들어 외쳐대고, 어느 뉴스를 봐도 암울한 경제, 적폐청산, 폭로 같은 우울한 모습만 연말의 미세먼지 속에 뒤덮여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해맑고 청명한 웃음을 잃어버리고 삶에 찌들어 살게 된 걸까. 나해철 시인의 '웃음소리'란 시처럼 순도 높은 웃음소리가 우리의 우울한 마음을 '찢어버려'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웃음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난 언젠가 웃음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꿈꾸며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한 뼘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섬뜩한 뼛조각 속에서/ 순을 밀어올리는 그것은,/ 일그러진 주름의 골을 헤집고/ 제 몸보다 몇 배나 큰 사랑꽃을 피워올리는 그것은,/ 아스팔트 위에서/ 콘크리트 속에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시 '웃음' 전문)
무술년 저물어가는 끝자락에서, 침울하고 우울했던 마음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제 몸보다 몇 배나 큰 사랑꽃을 피워올리는 환한 웃음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몇 시간 뒤 밝아 올 기해년 새해에는 좀더 해맑은 웃음들이 만개해 '푸르른 하늘로 된 세상'을 열어주기를. 어색하게 붙이고 다녔던 '가면'도 깔끔하게 벗어버리고 진실의 민낯으로 서로 마주보고 환하게 웃음 지을 수 있기를.

/권영준 시인·인천 부개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