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꺼내 나누는 '문화 사랑방'
▲ 골목박물관 전경. 전시장에 유등이 걸려있다.

 

▲ 오빠생각을 작사한 최순애 오빠 최영주의 생전 모습

 

▲ '골목박물관' 전시장을 안내하는 푯말.

 

▲ 주민으로부터 기증받은 물품들.

 

▲ 수원 행궁동 주민 5인방의 입간판.

 

▲ 신풍초등학교의 교재들.


더페이퍼, 묘수사 → 전시장 재탄생

오빠생각 최순애 오빠 최영주 생애

신풍초 100년 역사 … 자료 전시 눈길

주민들 기증품 '살림살이' 展 꾸며

수원 토박이 어르신 5人 이야기도




뜨거운 무더위에도 이거 하나면 끄떡없다,

부의 상징으로 여겼던 골드스타 선풍기, 아프면 무조건 이것부터 찾는다. 국민 연고 안티푸라민, 우리 집 가계 살림의 든든한 지원자. 운주 주판,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까 현상소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던 미놀타 카메라…이름만 들었을 뿐인데 고새 추억에 잠긴다.

그땐 앞집 순이네고 뒷집 철이네고 밥상 위 수저 개수까지 꿰고 있던 시절이었다. 문득 과거로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타임머신을 대신하는 전시회가 수원을 찾아왔다.

우리 동네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 진솔한 삶의 이야기 '행궁동 골목 박물관' 전시회가 그때 그 시절로 안내한다.


# 이웃의 삶을 만나는 특별한 전시회

26일 국내 유일의 '골목'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수원 북수동에 문을 열었다. 골목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니 …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골목박물관'은 수원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 더 페이퍼가 법화종 최초의 사찰인 묘수사를 마을 기록 전시장으로 새롭게 탈바꿈해 재탄생시킨 공간이다.

박물관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마을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공유하며 아카이브 한 이것들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고 지역 주민의 참여와 소통을 취지로 마련 됐다. 골목박물관이 시민들의 기억저장소이자 공유된 기억을 나누는 문화 사랑방으로써 우리네 삶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지역의 정서와 역사가 곳곳에 남아있는 행궁동 성안마을을 배경으로 골목골목 마주하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와 그들로부터 기증받은 옛 물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한다.

# 행궁동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기와지붕으로 세워진 박물관의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물고기 모양 유등이다. 밤이 되자 유등에 불이 켜지고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은 마치 담벼락 위로 헤엄을 치듯 빛을 내뿜는다. 앞마당을 가운데 두고 가장 먼저 둘러봐야 할 전시는 '48시간 행궁동 여행'이다.

남창동, 북수동 등 12개 동네의 대표 관광지와 명물, 지역의 특색들과 히스토리가 소개된 흡 사 '가이드 맵'같은 이 전시는 골목박물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골목박물관에는 작은 영화관이 있다. 아니 영상관이라는 말이 어울리려나? 그 어느 멀티플렉스 대형 극장에서도 볼 수 없던 영화가 이곳에서 상영한다. 행궁동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상 15편을 '행궁동 인생극장'에서는 언제든 감상할 수 있다.

마당 한 편에 반가운 물건이 보인다. 음악시간 선생님의 풍금 연주 따라 노래 부르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색색깔 분필 자루 등 지금은 사라진 교재·교구 물품들이 고스란히 전시된 '신풍초등학교' 전시장이 있다. '신풍초등학교'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행궁동에 자리했던 학교였지만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광교로 이전을 하게 됐고 이전을 하면서 기증받은 물건들을 전시하게 됐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동요 '오빠 생각'의 한 구절. 12살의 최순애가 친오빠 최영주를 생각하며 써내려간 글귀다. 1914년 수원군 수원면 북수리에서 1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난 최순애는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동요 '오빠생각'으로 입선하며 한평생 아동 문학과 음악에 몸담으며 살아왔다.

수원을 대표하는 문학인인 최순애의 일대기와 일제강점기를 지낸 국내 잡지 편집기획자였던 오빠 최영주의 일대기를 골목박물관 '오빠생각'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골목박물관의 백미는 단연 마을기억 저장소 '행궁동 살림살이' 전시다. 이사를 가면서 혹은 기억하고 싶어서 행궁동 도처에서 기증받은 낡은 물건들이 저마다 사연을 갖고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던 작은 나막신 하나는 평생 반려자인 남편이 손수 깎고 다듬어 아내에게 받친 선물이다.

이 전시장에는 수원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주민 5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이곳 수원 남수동으로 시집온 뒤 60년을 살아온 이병희 할머니, 한국전쟁 당시 수원으로 돌아와 생계를 위해 부친이 문을 열었다는 광덕상회, 대를 이어 광덕상회를 운영하는 조웅호 할아버지, 남수동에 아주 오래된 기와집,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명품집을 수십 년째 떠나지 못하는 이용재 할머니, 수원 종로 사거리에 맥가이버, 신용공업사 신용길 사장,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든 그곳, 3대째 대대손손 명맥을 이어온 수원 팔달로 터주대감 신영제분소에 강정희 어머니. 수원을 지켜온 이들 5명의 얼핏 볼품없어 보이는 낡은 물건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안고 세상 둘도 없는 귀중한 물건으로 탄생했다.

또 이들 외에 지역 주민 25명의 삶의 이야기가 담긴 책도 이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서영 더페이퍼 대표는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사라질 이것들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마련한 전시회입니다. 많이들 찾아와 지난날의 추억 여행을 즐기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