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공유경제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다. 나눔으로 커진다는 풀이가 매력적이다. 덩달아 공유를 앞세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속출하고 있다. '개인 소유에서 여럿의 공유'를 앞세운 공유경제 원조는 하버드대 로렌스 레시그 교수. 2008년 닥친 세계적 금융위기가 계기다. '타임'은 2011년 공유경제를 '세상을 바꾸는 10대 아이디어'로 선정했다.

레시그를 뒷받침한 건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 몇 해 전 출간된 그의 저서 '한계비용 제로사회'를 통해서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공유경제를 바탕으로 한 '협력적 공유사회'의 등장을 널리 전한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 패러다임이 맞선 이후 최초로 낯선 경제 패러다임이 나타났다는 거다.
리프킨이 설파한 공유경제는 매력적이다. 시장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해 한계비용이 제로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가격도 제로에 가까워져 시장의 교환은 뒷걸음친다는 것. 공유경제 영토는 그 틈새에서 발아돼 빠른 속도로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교환가치가 공유가치로 대체된다는 건데, 달리 말하면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의 전화(轉化)다.

리프킨은 이런 변화를 낙관한다. 자원절약, 온실가스 절감 등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성취의 밑거름이 될 거라 전망한다. 심지어 제로 수준 한계비용을 향한 패러다임 전환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궁극적 기준이 될 거라 전망한다.

하지만 그런 전망을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은 팍팍하다. 이미 공유경제의 이로움을 공짜수준으로 누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 이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는 길고 짙다. 백만 명 택시기사가 광장으로 나선 건 어둔 그림자이자 상처다. 변화를 뒷받침할 제도 장치가 기술 진화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부작용 역시 크다.
부실한 소비자 보호 장치와 안전성 문제 등은 오래 묵은 숙제지만 답이 보이질 않는다. '내 것'아닌 '남의 것'을 공유하는 데서 오는 폐해, 즉 '공유지의 비극'도 문제다. 이 모두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 진통일까? 혹독한 대가에도 미래는 여전히 팍팍 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두 질문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를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