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문화체육부 차장


한바탕 비가 몰아치고 거센 바람에 뿌리째 뽑힐 듯 하더니 잠잠해졌다. 전조가 너무 강해서인지 이번 폭풍우에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인천문화재단이 그렇다.
이곳을 보면 인천의 정치가 읽힌다.
15년 된 밑동은 대지와 고착화 돼 철옹성이다. 외세에도 꿈쩍하지 않는 자기 방어력을 무기로 그들만의 철학으로 뭉쳐 있다. 계절마다 잎사귀의 색이 바뀌고 철마다 꽃이 피어도 밑동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밑동 위는 전쟁터다.

꽃은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외면 받으면 때맞춰 떨어진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열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순리는 이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가차 없이 싹을 자르고, 흔적을 지운다. 그래서 꽃은 향기에 취하게 만들고 화려함에 눈을 멀게 해 개화를 적극 활용한다.
새로운 꽃이 피면 분위기는 확 바뀐다.
꽃에 투영되는 색에 따라 벌과 나비의 방향이 좌우로 나뉘고 그에 맞춰 줄기와 잎사귀가 새롭게 돋아난다. 꽃이 바뀌면 가장 먼저 날아드는 벌과 나비의 방향이 다르다.
반면 땅은 한결같다. 꽃이 빗방울을 머금고, 다시 줄기와 잎사귀가 차지해도 땅은 성내지 않는다. 대지에 닿지 않은 빗물은 땅을 메마르게 해 생을 소멸시킨다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꽃과 줄기와 잎사귀만이 이 행위를 반복한다. 땅은 시민과 묵묵한 예술가이다. 이들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지만, 매번 상처 입는다.

이번 꽃은 '다름'과 '틀림'의 차 때문에 낙화 시기가 빨랐다. 해바라기처럼 빛만 바라봤다는 주장부터 빛의 방향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꽃을 피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인천 문화는 1~5대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바뀔 때마다 변했다. 인천시 또한 빛의 방향이 바뀌었으니 재단에 변화를 암묵적으로 바라고, 다수당의 인천시의회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새로운 대표이사를 뽑는다. 이번 대표이사는 어떤 방향의 빛을 취할까. 예전과 다르지 않다면 낙화 시기는 이미 정해졌다. 그러니 송곳 위에 곧추 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그런 대표이사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