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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 열리고 너른 갯벌이 펼쳐진 이른 아침. 친구와 해초라도 따다 먹을까 하고 어장으로 나섰다. 제법 맑은 날이었는데, 갑자기 안개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길을 잃을까 두려움도 함께 밀려왔다. 갯벌은 위치를 알아차릴 그 무엇도 없는 사막 같아서, 길을 잃고 사고를 당한 사람들 소식을 접해본 터라 더욱 그랬다. 주위에 있던 어장 나온 주민들도 웅성대기 시작했다. 뭍으로 나오려고 허둥지둥 방향을 찾는 동안 모두가 안개 속에 갇혀버렸다. 순식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평화롭던 갯벌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와중에 놀랍게도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눈을 감거라!'
소스라차게 놀란 나는 귀를 의심하고 그 소리에 집중했다.
시각 장애인 이었던 아버지는 어부로 살아가면서 안개속의 어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위풍당당하게 다니셨는데, 나는 그 모습이 늘 자랑스러웠다.

'눈을 감고 마음의 눈을 떠야해!'
친구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멀리 자동차의 경적소리, 차가운 바람의 방향, 놀란 마음에 움츠려있던 여러 감각들이 되살아나 마을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발걸음을 천천히 떼어 걷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뭍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 안전하게 구해낸 후, 비로소 모래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 아버지는 이 길을 매일 이렇게 다니셨구나!
고기잡이 하시며 늘 자신있게 걷던 걸음 속에 아버지가 느꼈을 두려움들과 고민들이 가슴에 전해져 온다.
학창시절에 들었던 폴고갱의 말귀가 떠오른다. '나는 보기위해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