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흥재 사진, 김용택·안도현 지음, 시공아트, 324쪽, 2만원
▲ 이흥재 사진, 김용택·안도현 지음, 시공아트, 324쪽, 2만원

 

"'모든 것은 다 새롭게 변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물론 부정적인 요소들은 과감히 바꾸어야 하겠지만, 우리 삶의 본질을 이루는 근본은 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이 부대낄 때 느끼는 훈훈하고 끈끈한 '정(情)'이다."(작가의 말. 이흥재)

장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온 장터 사진가 이흥재와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김용택과 안도현이 만나 장날의 추억을 책으로 되살려 냈다. 20여년전 이흥재와 김용택, 이흥재와 안도현이 각각 만든 책이 한 권의 새로운 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제는 장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여전히 장터는 열리고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도 지금도 장터에는 반가움이 있고, 그리움이 있고, 추억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장날의 만남에 관한 것이다.

며칠에 한 번씩 사람과 물건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날은 사람들의 사교의 장이자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의 장소, 그리고 세상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뉴스 채널과 같은 역할을 하곤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이자 아들, 딸이기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소식을 전했다. 물건과 정(情)이 동시에 오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장날은 겨우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생기를 잃어 가던 장날에 사진가 이흥재는 따뜻함을 불어넣고, 표정을 덧붙이고, 사연을 끌어내 눈앞에 생생한 장터를 재현한다. 장터를 오가는 한 명, 한 명을 클로즈업해 카메라 앞에 세우고, 그렇게 그들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

버스 뒷문으로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내리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은 장바구니를 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국밥집에 모여 앉아 우스운 이야기를 하는 듯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 이들은 그리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장날> 속 인물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평범한 이들이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들은 제각각 사연을 지니고 다가온다. 물건을 고르다 말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 아주머니, 장터 바닥에 둘러앉아 점심 식사를 하는 상인들, 사이좋게 국밥을 나눠 먹는 노부부. 평범하지만 특별한 장날의 사진들은 박제된 옛 장터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