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위원

 

정부가 국민연금 개편 '4지선택형'을 출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대체율 50% 달성을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 객관식 문제는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정답을 고를 수 있다. 다른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는 자율적이고 폭넓은 사고는 용납되지 않는다. 지난달 7일 문 대통령이 국민연금 제도개선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후 나온 방안들이다.

'보험료를 더 내고 더 받겠다'는 주장과 대립되는 의견도 포함되기를 바랐던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1안은 현행유지, 2안은 기초연금만 40만원으로 조정, 3안은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고 보험료율을 12%로 점차 올리는 것이다. 4안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이다.

2007년 참여정부 시절 "약사발(보험료 인상) 엎고 사탕(기초연금)만 먹어버렸다"며 사퇴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생각난다. 당시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은 국회에서 폐기되고 첫 시행하는 기초연금법만 통과됐다. 18일 국민연금심의위원회 공익대표 김수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재원 고갈 예방 방안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안을 심의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지난 9월말에는 '70년 적립배율 1배 보유'의 재정 목표를 설정한 4차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도 재정 안정 방안이 빠졌다며 오건호 위원(내가만드는복지국가운영위원장)이 사퇴했다.

국민연금의 장래가 불안하다는 전문가들의 반발은 이어졌다. '덜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 적자시점과 고갈시점에 대한 근본적인 대비책은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불안정 복지의 대명사로 또 남게 됐다. 고령사회로 치닫는 한국의 안정적인 노후 복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정권 표퓰리즘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박능후 장관에게도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4지선다형의 정부 안에서 어느 항목을 선택하든 후 세대의 노인 부양부담은 더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혈세로 메꾸다 보면 함께 잘 살 수는 처방은 요원하다. 정부가 낸 국민연금 개선 안의 질문지에는 진짜 선택해야 할 정답이 빠졌다. '무늬만 개혁', '미완의 정책'이라는 날선 비판은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중점을 둔 노후소득 보장에 치우쳤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의 국민적 지지를 얻을 기회를 잃었다.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 방안은 또 차기 정부의 몫인가. 입법화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