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 한국정신분석상담학회장

첫 경험은 언제나 강렬하다. 첫 키스, 첫사랑, 첫 눈, 첫 자동차, 첫 해외여행, 첫 출근길 등 모든 것의 처음을 사람들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에 비해 마지막 경험은 종종 예측할 수 없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맹세는 빈번하게 지켜지지 않고 반대로 많은 경우 다음번을 약속하지만 끝내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첫 경험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마지막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미국의 한 유치원의 댄스 시간이었다. 4, 5세 아이들은 춤을 추기 위해 다른 아이에게 춤을 신청해야만 했다. 어린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며 누구와 추자고 할까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누군가에게 다가가 춤을 추자고 했을 것이다. 그 결과 어떤 아이들은 처음 춤추자고 한 아이와 춤을 추는 행운을 누렸지만 어떤 아이들은 상대에게 거절당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이에게 행운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이때부터 한 살 때 평가한 애착의 질에 따라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엄마와 불안정하게 애착되었던 아이는 첫 시도에서 거절당하자 한쪽 구석으로 가서 댄스 시간 내내 다른 아이들이 춤추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그러나 엄마와 초기에 안정된 애착을 보였던 아이는 첫 아이의 거부에 상관없이 다른 아이들에게 가서 계속 춤을 추자고 신청했다. 언제까지? 그 아이는 성공할 때까지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춤 신청이 결국 어떤 경험으로 끝났느냐다. 엄마와 초기에 안정된 관계를 가졌던 아이나 불안정한 관계를 가졌던 아이나 모두 거절당하는 경험을 했다. 어떤 아이는 거부와 좌절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함으로써 성공하여 유치원의 댄스 시간을 긍정적 경험으로 끝냈다. 다른 아이는 한 번의 신청에 그대로 허물어져 다시 도전하지 않음으로써 부정적 경험으로 끝냈다. 어쩌면 옆의 아이에게 신청했다면 혹은 그 다음 다음 아이에게 했다면 성공했을지 모른다.

왜 아이들은 이렇게 다르게 행동할까. 이 결과는 미국에서 아이들의 발달을 장기적으로 추적한 연구팀에서 발표한 것이다. 연구팀은 생후 1년에 엄마와 아기의 관계가 얼마나 애정적이고 신뢰로운지에 따라 애착의 질을 크게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3년 후 그 아이들이 유치원생이 되었을 때 다시 찾아가 아이들을 평가했다.

유치원 교사들은 아이들의 과거 애착 상태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이 연구결과는 심리학 개론 시간이면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에릭슨의 생후 1년에 신뢰 혹은 불신 형성에 대한 이론과도 상통한다. 즉 세상에 나온 아기들이 경험한 첫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자신의 신체적 욕구에 적절히 대응해 주고 자신을 씻겨주고 안아주고 닦아줄 때 따뜻함과 사랑이 느껴지는 세상인가. 아니면 아프거나 힘들거나 배고프거나 엄마가 배고픈 거라며 늘 우유병을 물려준다면 아기는 자신의 고통이 어디서 오든 배고픔이라고 배울 것이다. 아이는 커서 불안해도 먹고 힘들어도 먹고 긴장해도 먹을 것이다. 첫 환경이었던 엄마에게 신뢰와 따뜻함을 느꼈던 아이는 좌절과 거부에도 다시 시도한다. 왜냐하면 엄마는 그 다음 아니 언젠가는 응답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엄마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아이는 그런 믿음이 없기에 더 이상 시도하지 않고 포기해버린다. 그 아이는 엄마의 또 다른 거부가 두렵고, 시도해봤자 소용없다는 오래 된 경험을 반복하는 것이 두렵다.
다른 연구에서도 엄마와의 관계가 불안정했던 아이는 힘들고 어려운 과제를 풀 때 옆에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다. 도움을 청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고 옆의 사람은 요청하면 기꺼이 도와줄 생각인데도 말이다. 아이는 혼자 내내 애쓰다 좌절해서 포기해 버린다. 엄마에 대한 불신이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발전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적절한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다. 그리고 가끔 누군가 그 요청에 응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살면서 긍정적 경험과 부정적 경험을 수 없이 한다. 그리고 어디서 멈추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경험할 수 있다. 2018년의 마지막 달 많은 일들이 생각처럼 안 풀리고 엉켜있다.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일들은 한 번 더 시도함으로써 부정적 경험이 긍정적 경험으로 바뀔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