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구장 팬들 앞에서 오래 뛰도록 힘내야죠"
▲ 금요초대석 인터뷰를 하며 박정권 인천SK와이번스 선수가 웃고 있다 .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박정권 SK와이번스 선수 사인.

 

 

기자가 된 후 처음으로 가슴 설레는 취재 길에 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발걸음마저 가볍게 만들었다.

올 가을 야구팬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든 야구팀은 누가 뭐라 해도 인천 SK와이번스다.

플레이오프에서 넥센과 벌인 명승부에 이어 코리안시리즈에서는 정규 시즌에서 무려 14.5경기 게임 차가 벌어지는 두산을 무너뜨렸다. 통계 숫자로는 SK와이번스가 우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천 SK를 응원하는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 2018 가을은 어느 해보다 짜릿했다.

SK와이번스가 코리안시리즈 정상에 우뚝 서는 데 한 몫한 36번 박정권 선수를 만나는 일도 짜릿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타석에 들어서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담감을 느끼지만 즐기는 야구로 인천 팬들에게 4번째 우승을 선물한 그를 만나봤다.

▲플레이오프·코리안시리즈, 믿을 수 없었던 짜릿한 승부
박정권 선수에게 있어 2018년은 냉탕과 온탕을 오간 한 해였다. 정규 시즌 대부분을 2군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다. 1군 엔트리에서 사라진 박정권 선수를 찾는 이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플레이오프 때 다시 등장했다. 넥센과의 1차전에서 박정권 선수는 끝내기 홈런을 터트리며 SK와이번스 왕조 부활을 알렸다.

'가을 DNA를 가진 남자', '천하무적'이라는 애칭에 걸맞게 그는 언제 2군에 있었냐는 듯 올 가을 베테랑으로 제 이름값을 했다.

그는 넥센 5차전과 두산 6차전을 명승부로 꼽았다.

"사실 두 경기 모두 선수 입장에서 볼 때는 SK가 지는 경기가 맞습니다. 흐름이 상대편으로 넘어갔으니까요. 그런데 올해는 진짜 뭔가 되는 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넥센전 김강민에 이어 한동민, 두산전 최정의 홈런에 저 역시 놀랐습니다. 세 선수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제 몫을 해준 겁니다. '아마도 2018년에는 SK와이번스 우승이 정해져 있었나 보다'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특히 올해 우승 감동은 오래갔습니다. 왠지 여운이 많이 남더라고요."

사실 코리안시리즈에서 14승 넘게 차이가 나는 두산을 SK와이번스가 꺾을 것이라고 그 누가 예상했을까. 그는 두산 6차전에서 최정 선수의 동점홈런에 승리를 예감했다고 전했다.

SK와이번스의 올해 우승 비결은 중요한 순간마다 계속 터진 '홈런'이었다. 선수들은 마치 '홈런 치는 비법'이라도 전수 받은 듯 했다. 박정권 선수가 말하는 비법은 있었다.

"당연히 모든 선수들이 타격 연습을 합니다. 홈런을 위한 별다른 훈련은 없습니다. 다만 힐만 감독님의 리더십이 선수들에게 많은 홈런을 치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야구를 즐기면서 하라'는 감독님의 말씀에 따라 다들 자율적으로 연습했고, 팀 선수 간 분위기도 좋아지면서 이룬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SK와이번스'맨' 박정권
대학 졸업 후 2004년 SK와이번스에 입단해 이제는 인천 프랜차이즈 선수가 된 박정권.

팀 맏형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묵묵히 역할을 해주는 그에게 인천 SK팬들이 보내는 믿음은 상당하다.

"중요한 순간에 타석에 오르게 되면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부담을 갖게 되면 몸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좋은 타격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간절함이 선을 넘어 긴장감이 되어 버리지 않도록 즐기면서 하는 야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가 유독 가을에만 살아나는 이유 역시 부담감에 있다.

"정규시즌 때는 사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가을야구를 하기 위해 모든 팀이 죽어라 달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을에는 그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남은 게임을 오히려 편하게 즐겨 보자고 생각합니다. 가을에 홈런이 많거나 한 건 아닌데 임팩트 있는 경기를 치르다 보니 얻어진 가을정권이라는 별명 같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바라보는 박정권 선수의 생각도 달라졌다.

"8년 전 우승 때는 MVP를 받았어요. 첫 우승이 아니었는데도 그때는 어찌나 좋던지, 뛰어다니고 난리도 아니었죠. 하지만 이번 우승은 차분하게 받아들여지더군요. 과거 아쉽게 졌던 시리즈들도 떠오르고요. 올해의 경우 처음 우승을 경험한 선수들이 대부분입니다. 젊은 후배들이 성장을 더 많이 한 해라 어느 때보다 기분 좋더라고요."

인천 SK맨으로 그는 내년 우승에 또 한번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휴식기간이라 공식적인 훈련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들 치열하게 개인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문학경기장에 나와 훈련하고 있죠. 새 시즌을 앞두고 있는 데다 감독님도 새로 오시다 보니 선수 간 경쟁이 뜨거울 수밖에 없어요. 이 기운 그대로 올해에 이어 2019년에도 우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오래 살아왔고, 또 살아갈 인천
SK와이번스에 입단한 이후 그는 줄곧 SK와이번스맨을 넘어 인천맨이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오래 정착하며 살고 있는 도시가 인천입니다. 15년 정도 됐네요. 제 고향에서도 10년 정도 살았고, 대학 때 4년 서울에서 잠깐 살았으니까요. 고향보다 더 오래 산 도시가 인천입니다. 이제 어디를 가든 인천이 고향 같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에게 있어 인천은 7살·9살 된 두 딸,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앞으로 계속 살아야 할 곳이다.

그는 최근 송도에 고깃집을 열었다. '인천에서 살아갈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냐'는 물음에 곧바로 박정권 선수의 호쾌한 웃음이 되돌아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 꼭 한번 방문하시죠. 저희 고기 아주 맛있습니다. 팬 분들이 오셔서 응원 한마디 해주실 때가 있는데 너무 기운이 나더라고요. 오히려 소통 공간으로 변신하는 분위기입니다."

박정권 선수는 최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하나 생겼다.

인천 문학구장에서 팬들과 앞으로 오랜 시간 호흡하는 것이다.

"10개 구단 통틀어 제 선배들도 3~4명 정도밖에 없습니다. 때론 이런 현실이 좀 서글프긴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지나오는 거니까요. 앞으로 문학구장에서 많은 팬들에게 제 얼굴을 좀 더 오래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필드에서 오랫동안 뛸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