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지난 12월4일 오랜만에 서울을 다녀왔다. 세종문화회관 챔버홀에서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의 구순(九旬)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시로서 읊을 수 없는 시경이 금강산이요 붓으로 그릴 수 없는 산수가 금강산'이라 했다. 그 금강산을 최영섭은 오선지에 그렸고 노래로 읊었다. '그리운 금강산'은 1961년 그가 숭의동 전셋집에 살고 있을 때 이틀 밤 꼬박 새우고 작곡했다.

기념 음악회에서는 성악가 11명이 최영섭의 가곡 22곡을 불렀다. 약관이었던 1950년에 작곡한 '추억'부터 올해 만든 '민들레 홀씨 바람에 실어' 까지 그의 70년 가곡 인생이 펼쳐졌다. 커튼콜 직후 그가 무대에 올랐다. "그동안 1000곡을 작곡하느라 새벽 2시 이전 잠자리에 든 적이 없다. 그래도 베토벤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남은 여생 5분의 1이라도 채우기 위해 더 작곡하겠다."

1929년 강화도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과 함께 화평동으로 이주했다. 창영초교를 졸업하고 인천중학교에 다니다가 해방 후 서울에서 고교와 대학을 마쳤다. 고향으로 돌아와 인천여중고, 인천여상에서 교편을 잡고 내리교회와 인천애협교향악단 등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다. 이런 배경으로 그의 음악에는 '인천'이 담겨 있다. 어찌 보면 실향민이 많이 살고 있는 인천에서 '그리운 금강산'이 만들어진 것은 운명이다.

새얼문화재단은 지난 2000년 8월 15일 인천문화예술회관 광장에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를 세웠다. 7m의 비석은 단순한 노래비가 아니라 통일의 염원이자 이정표로 우뚝 섰다. 실향민들은 저마다 가슴 속에 저 육중한 돌 하나씩을 무겁고 답답하게 담고 살아왔을 것이다. 돌에 깊게 새긴 노랫말이 풍상에 씻기기 전에 그날은 와야 한다.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그리운 금강산 후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