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언제부터인가 세금을 내는 것이 온전히 옳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국가가 운영되어야 하니 납세의 의무는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 과세와 징세는 엄정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거기에는 국민이 피땀 흘려 벌어서 내는 세금이 꼭 필요한 곳에 사용된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납세의 의무는 세금이 바르게 사용된다는 동의인 것이다.
이미 국가의 세금징수는 시퍼런 칼날을 들이댄 것 같이 엄격하여 백성의 고혈을 짜내던 독재군주의 시대보다 더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라는데, 세금의 압박은 비민주주의 시대보다 훨씬 더하다는 평가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권력을 쥔 자들의 칼자루에 휘둘려 정해지기만 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조세제도이다.

조세전문가는 아니지만 필자와 주변인 모두 과제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내 세금이 건전한 국정운영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과하다 해도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텐데, 세금이 위정자들의 정치활동에나 도움을 주는 것 같아 납세에 저항감을 느낀다. 없어져야 할 항목은 늘 그대로이고, 포퓰리즘적 정치를 위해 과세항목은 시도 때도 없이 늘어나고 변경되어 많은 국민의 목을 죈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과세에 동의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국민이 납득하는 과세만이 정당한 것일 텐데,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과세항목이 너무나 많다. 현행 조세제도는 마치 정부가 좌판을 깔아놓고 행위하는 모든 일에 과세하여 거둬들이는 구조처럼 느껴진다. 필요한 것도 있지만 필요 없어 보이거나 건전해 보이지 않는 좌판마저 깔아놓고, 모두 그 위에서 행동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좌판을 이용한 수수료는 부담해야 하는 구조이다. 좌판을 깔아놓은 정부는 국민의 손익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금만 걷어가면 그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걷어간 세금이라도 국민을 위해 잘 사용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바로 국회의 역할이다. 납세자인 국민이 여유 있어 내는 세금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는 이런 세금을 쓰겠다는 정부의 예산안을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

한국의 예산이 470조원의 어마어마한 액수로 되었다. 예산규모가 크니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이 많다는 것인데, 국민 입장에서 보면 무턱대고 자랑할 일만은 아니다.
이번 국회의 예산안 심의도 밀실에서 부실하게 이루어져 국민의 혈세가 꼭 필요한 곳에 사용된다는 전제를 처음부터 묵살하고 말았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를 위해 국민의 세금을 다다익선으로 가로채 가려 하고 이를 지역민들에게 잘한 행동처럼 홍보한다.
쪽지예산도 그렇고 힘 있으면 더 가져오고 힘 없으면 못 가져오는 그런 예산배정은 납세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정부의 예산편성과 이에 대한 국회의 심의는 늘 국민들과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국가 예산이 눈먼 돈처럼 사용된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절박하지 않은 예산은 나눠먹기식 배정이나 부정사용이 끊일 수 없다. 의원들의 세비인상, 해외연수경비, 공무원들의 급여인상, 업무추진비 등의 각종 예산은 국민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국민의 세금으로 호가호위하는 행위가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예산이 회기를 이유로 무조건 써버려야 하는 것도 혈세낭비를 제도화하고 있다. 비효율적인 예산집행을 강요하는 제도는 세금낭비의 전형이지만 이 또한 반복되는 일들이다. 세금을 걷는 치밀함에 비하면 쓰는 일은 느슨하고 무책임하며 부정하기까지 하다.
이런 상황에서 납세 의무가 정당하다고만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금을 걷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면, 쓰는 일에도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정부와 국세청이 팔을 걷어붙인다면, 국회도 팔을 걷어붙여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국민의 일에 관여하는 정부의 방만한 국정운영은 세수확대와 함께 국민의 세부담증가로 이어져 국민을 피로하게 할 뿐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필요할 일만 담당하도록 정부기구와 공기업 등을 대폭 축소하고 나머지는 국민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긴다면 예산을 줄이고도 훌륭한 국정운영이 가능할 터이다. 부유한 국가는 국민들이 잘 사는 것이지, 국민들이 어렵다는 데 국가의 예산만 커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