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위원

 

1980년대 초반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광주, 부산, 대구, 서울로 이어졌다. 5·18 민주화운동의 강경진압을 묵인한 미국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항거였다. 특히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반미정서가 확산된 계기였다. 미국의 패권주의가 만연한 시대에서 '양키 고 홈'은 국제정서에 스며든 미국에 대한 반란이었다.

이제 남북 교류협력의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문재인 정부에서 북한의 위협이 사그라지고, 미·중의 동아시아 패권 양상은 첨예하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정서도 과거와 같을 리 없다. 동북아의 군사적 균형이 미국에 더도 없이 필요하다는 것은 미국 군사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바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통하는 한미관계도 용납될 수 없는 시대다.
최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국은 안보 무임승차 국가'라고 비난했는가 하면 최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끔찍한 군사협정'이라고 폄하했다. 한미 연합훈련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니 미국의 안보 비즈니스는 노골적이다. 주한미군이 들어선 부지와 전기·수도·세금 등 생활기반 비용에 드는 한국 정부의 비용부담은 방위비 분담액의 몇 배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종전 선언은 주한 미군 철수와 상관이 없다"고 계산된 발언까지 내뱉었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외교 전략의 복잡성이 작용한다.

정부가 오만불손한 트럼프의 '입'에 끌려간다면 국민의 자존심은 멍투성이다. 주한미군 주둔이 한국을 지원하기 위한 일방통행 안보 전략인가를 두고 생각해 보면 미국의 속내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현재의 두 배 정도로 올려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미 정부는 50% 정도를 인상해 1조3500억원을 목표로 협상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터무니없는 술책이다. 올해 우리 정부의 표면적 방위비 부담액은 9602억원이다. 정부도 전략적 대처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가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는 마당에 주한미군의 역할은 축소하고 비용을 떠넘기려는 속셈이라면 한미동맹의 신뢰는 후퇴할 게 뻔하다. 도리어 미국 측에 방위비분담 인상을 요구해야 한다.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미군의 한국 주둔 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미국은 실리를 챙기려다 명분을 잃는 우려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방위비 분담액을 놓고 '반전반핵, 양키 고 홈'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국 국민의 정서라면 심각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