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 '그리운 금강산'을 인천에 바칩니다"
▲ 인천문화예술회관 야외광장에 있는 최영섭 작곡가의 노래비.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 최영섭 작곡가. /사진제공=강화군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이 부른다'
'그리운 금강산'의 마지막 구절이 와 닿는다. 한반도에 감도는 평화 분위기를 타고, 다시 한 번 금강산을 밟아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머지않아 만나볼 금강산의 모습을 음악으로 그려본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분단 이후 금강산 절경에 가 볼 수 없는 심경을 표현한 내용으로 1961년에 만들어졌다. 애초에는 해외 동포들에게 감동을 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단 교환공연을 통해 소개되면서 통일 염원의 상징적인 곡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인천에서 만들어진 이곡이 다시 한 번 인천에서 울려 퍼진다. 작곡을 한 최영섭 작곡가 또한 다시 한번 고향 인천의 땅을 밟는다. 추운 겨울 우리의 마음을 적셔줄 '그리운 금강산'에 흠뻑 빠져보자.



#'그리운 금강산' 인천에 울려 퍼지다
12일 서구 엘림아트센터 무대망향·추억 등 주옥같은 가곡 연주

'한번은 남산에 산뜰 다방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있었는데, KBS 방송국 직원이었던 동요작곡가 한용희씨를 만났어요. 아니 그런데 한강, 남산, 낙동강, 서해, 동해, 백두산, 압록강 다 있는데, 왜 금강산 노래가 없냐고 저에게 묻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과연 그렇구나'. 그길로 서울에서 인천을 내려가서 한상억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분이 금강산과 관련한 시를 쓰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인사도 못하고, 집에 와서 밤새 작곡을 했어요.' (인천문화예술회관 노래비 中)
최용섭 작곡가 이틀밤을 꼬박 새우며 만들었던 '그리운 금강산'이 오는 12일 오후 7시30분 인천 서구에 위치한 엘림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인천문화재단 원로음악인 활동지원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최영섭 선생의 구순(九旬)을 기념해 선생의 음악 세계를 조명한다.
공연은 그의 예술을 나의 고향, 나의 조국에 바칩니다라는 의미로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타이틀로 진행된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곡인 '그리운 금강산'을 비롯해 '망향', '추억', '그리워라 두고 온 그 사람들' 등 최영섭 작곡가의 주옥같은 곡들이 연주된다.
그의 곡들은 "가곡 대중화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는 평가를 들으며 한국 가곡사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 윤용하 선생의 '보리밭', 김성태 선생의 '이별의 노래', 조두남 선생의 '선구자', 양방언 선생의 'Frontier!', 김동진 선생의 '가고파' 등도 연주될 예정이다.
공연 출연진들도 다채롭게 구성됐다. 테너 이정원·최영호, 바리톤 박경준, 소프라노 이지현· 양지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들과 김보미 피아니스트가 가곡 무대를 꾸미며, 이하은 피아니스트가 독주를 진행한다. 기타듀오 비오와 앙상블 콘 스피리토도 무대에 올라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예정이다.
인천문화재단은 "최영섭 선생의 작곡 생활 70년, 가곡 작곡 700곡, 가곡 악보 전 7권 완간, 기악곡 70곡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선생의 잘 알려진 가곡들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선생의 고향 인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관람은 전석 초대로 진행되며, 자세한 정보는 엘림아트센터 홈페이지(http://www.elimartcenter.co.kr/index.asp)에서 확인 가능하다. 공연 문의는 더클래식아트(02-355-8561)로 하면 된다.


#최영섭, 그의 나이 구순(九旬)
강화군 화도면 태생시, 각종 상·노래비 등 공로 인정

최영섭 선생은 1929년 11월 28일 강화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일제 치하에 인천중학교를 다녔다. 그가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인천에서 보낸 시간은 30여년 정도다.
그가 30여년 동안 지냈던 '인천'은 그에게 '음악'을 꿈꾸게 해준 곳이다.
창영초 재학시절 그는 처음 들은 노래를 단번에 외워버려 학교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일본 육군 대장이 창영초를 갑자기 방문할 일이 생겨 교장 선생님의 지시로 학교 대표로 뽑혔고, 선생님이 들려주는 지정곡을 단 두 번 연주를 듣고 '다 외웠다'고 대답해 학교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그가 음악가로 평생 길을 걷게 된 것은 인천중학교시절 밴드부에 들어간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플루트로 시작해, 클라리넷, 오보에 등 행진곡에 필요한 악기들을 혼자 연습해 섭렵했으며, 강당에 있던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를 혼자 독차지 하기도 했다.
인천이 그에게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준 곳이었다며, 서울은 그의 꿈을 펼치게 해준 곳이었다.
해방 이후 그는 서울 경복고에서 임동혁 선생을 만나 작곡 이론을 배웠으며, 서울대를 들어가 음대 작곡과에서 김성태를 사사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비엔나국립음대 대학원 지휘 석사를 마치고, 귀국한 선생은 이화여고 음악교사와 한양대, 상명대, 세종대 교수를 역임했다. 인천애협교향악단 상임지휘자와 한국작곡가회 부회장, 한국예술가곡진흥회 회장, 한국예술가곡 연합회 명예 회장 등을 지냈다.
그동안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59년 인천시문화상을 시작으로 2009년 대한민국문화훈장, 2017년 '올해의 인천인' 선정까지, 10여 회에 달하는 각종 상과 훈장을 받았다. 칸타타 '이름다운 내 강산'에 삽입된 곡인 '그리운 금강산'을 비롯해 그의 대표곡은 '길', '마을', '모란이피기까지는', '사랑의 날개' 등이 있다.
그를 기념하는 비석이 인천에 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야외광장에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앞에 365일 시민들이 그리운 금강산을 들을 수 있도록 음악 청취 시스템이 함께 설치돼 있다. 또 그의 생가를 표시하는 비석이 강화군 화도면에 설치돼 있다.
한국 음악계의 산 증인이 된 그는 그동안 끊임없이 앞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그렇게 그의 나이 구순(九旬). 냉혹한 이 계절이 지나 그리운 금강산을 볼 수 있는 봄날이 하루 빨리 찾아오길 바란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