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현만 인천공단소방서장


2018년은 참으로 기억에 오래 남을 일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세일전자 화재다. 관할 소방서장으로서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고 가슴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무엇이 문제일까?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심해 화재현장에 출동한 대원들이 여간 고생하지 않았다. 폭염이 내리쬐던 8월, 대응 2단계가 발령되어 현장지휘를 하면서 두터운 방화복으로 인해 체온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거의 탈진상태에 다다른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목이 말라 마신 물보다 오히려 몸에다 부은 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지휘관도 이러한데 현장에서 진압하며 출동한 대원들은 어땠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더웠던 폭염의 입김이 사라지기도 전에 아침·저녁으로 섭씨 10도 이상의 기온차로 인해 올해 단풍은 유난히 붉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 멀리 유명한 산을 애써 찾아가지 않더라도 주변 곳곳에서 감상할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단풍은 한마디로 나무가 겨울을 준비하는 것으로 동물이 월동을 하듯 나무도 모든 것을 멈추고 그동안의 수고를 마감하고 내려놓는 "내려놓음"의 과정이다. 나무줄기에서 잎줄기로 이어진 부분을 '떨겨'를 통해 영양분과 수분이 교류하지 못하게 막아 잎은 더 이상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초록색의 근원인 엽록소는 파괴되어 본래 갖고 있던 나뭇잎의 고유 색상이 노출되는 것이 바로 '단풍'이다.

모든 나무가 이렇게 철저하게 살아남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어떨까? 지구가 생성되어 현재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은 '천재'이다. 인간도 그 속에 속해 살아가고는 있지만 '안전의식'은 생태계에서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방시설을 폐쇄하거나 고장난 채로 방치하는 건물주나 업체 대표자는 추위가 점점 다가옴에도 이익을 더 얻기 위해 과감한 '떨겨' 기능을 작동하지 않음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어떨까? 나무는 닫히지 않은 그 부분으로 동해를 입어 죽고, 우리 회사를 위해 애쓰는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했던 길을 퇴근길에 밟지 못하고 아침 인사가 마지막으로 될 수도 있다.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직원과 그 가족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나무를 닮은 사람이 아닐까 한다.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KT 통신구 화재사례에서 보듯, 3억원을 투자하여 화재를 미리 막을 수도 있었던 것을 그 100배인 300억원 이상의 통신비 감면과 함께 수백억의 소송전을 치르게 되지 않았는가.

화재가 많이 나는 겨울이다. 소방관들은 24시간 신속한 출동을 위해 훈련에 매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 자가용을 점검하듯 차량에서부터 개인장비까지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 건물주나 업체 대표자는 설치된 모든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안전을 위해 보강할 것은 없는지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의 '안전투자'는 미래의 회사 안녕과 직원 행복을 지키는 기초라는 사실과 사소한 흠이나 결함이 나중에는 인명피해를 발생시키는 대형화재를 낸다는 인식을 갖고 올 겨울준비를 했으면 한다. 나무처럼 '떨겨'기능을 작동해야 할 때가 바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