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간장게장을 즐겨먹으면서도 꽃게가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필사적으로 낮게 웅크렸으리라는 것을 생각해 본적은 없다. 다른 음식들과 달리 오랜 시간 살 속에 양념이 스며들어 만들어지는 음식이 간장게장이다 보니, 단숨에 숨통을 끊는 다른 음식들보다는 안쓰러움, 체념, 애틋함 등의 감정이 이 음식에 담겨 있음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간장게장은 외로운 음식이다. 몇 날 며칠을 뜨거운 간장 속에 몸을 담그고 뱃속 새끼들을 지켜내려 몸부림치는 모성의 눈물겨움이 스며들어 있다. 스며드는 것은 예고도 소리도 없다. 영원한 침묵의 강으로 존재의 온몸이 잠식돼 나갈 뿐 한 줄기 희망조차 찾아지지 않을 때, 마침내 순응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차린 어미꽃게는 알들에게 세상의 마지막 인사말을 건넨다. '아기들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저녁이라 먹먹함이 스며드는 것이니, 불 끄고 엄마의 품에서 함께 자자'

꽃게의 절박한 모성애가 아스라이 담겨있는 이 시는 우리의 삶을 숙연하게 돌아보게 한다. 어찌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슬픈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의 맛난 음식들에 깃들어 있는 생존의 몸부림, 마지막 숨결, 반짝이는 눈동자, 거센 힘으로 밀려오는 운명의 소용돌이, 어쩔 수 없는 체념과 아픈 이별……

집의 냉장고를 열어보니 잘 정돈된 생선토막과 잘게 다져진 돼지고기 먹다 남긴 닭볶음냄비 등이 층층이 놓여있다. 모두 한때는 소중한 생명이었던 것들…… 저 꽃게들처럼 이것들에게도 어미가 있어 얼마나 애틋하게 젖을 주고 보듬어 주었을 것인가.
스며드는 것들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도 별로 없을 것이다. 죽음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삶이 소중할 수 없는 것처럼, 스며드는 것들로 인해 인간의 사랑이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보니 잠시 맘이 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간장게장을 여전히 맛있게 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가 자꾸만 생각날 것이기에.]

/권영준 시인·인천 부개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