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나라 대표 변호사

 

법을 직업으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어서 가끔 상담을 하거나, 사석에서 "뭐 이런 법이 있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한참 들어주고 있으면 '한국 법은 법도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쉽게 나온다. 일단 흥분해서 떠들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다. 한참 듣고 있다가 상대방이 "안 그래요?"라고 할 때에는 끼어들 수밖에 없다. "그 법은 한국에만 있지 않고 세계의 보편적 법조항 중 하나로 문명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다"라고 설명하면 그제서야 가득한 불만의 일부를 내려놓는다.

왜 그럴까? 법은 속성상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그 내부에 평등의 요소와 불평등 요소가 동시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 주장처럼 "국가는 부르주아지의 집행위원회"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이 한 사회 주류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점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 대해 입법을 하는 국회, 집행을 하는 행정가, 법적인 통제를 하는 법률가는 과도한 불평등이 법 자체 또는 그 집행과정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긴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법 체계에서 과거 고도성장시기에 노동운동에 대한 과도한 억제, 기업가에게 일방적인 보조금 지급을 규정한 경제관련 법률은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불평등법률'이다. 이 정도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실제보다 법이 훨씬 더 불평등한 것으로 느끼게 될까? 일단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막연한 평등에 대한 갈구와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문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짧은 시간 내에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고, 평균 학력은 급속히 신장해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타인의 푸대접에 대해 굉장히 예민해지며, 강한 평등의식을 머릿속에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실에서는 여전히 강한 권위주의와 인간에 대한 차별의식이 각자 머릿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조현아·조현민 자매의 직원에 대한 폭행, 최근에는 양진호 미래기술 회장의 직원에 대한 가해로 보이듯 현실은 머릿속의 맹목적 평등과 달리 폭력적이고 엄격한 불평등의 연속임을 보게 된다. 재벌만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내 서열, 평범한 직장인들이 같은 백화점 점원에게 가하는 '갑질'을 통해서도 우리 사회의 만연한 불평등 서열적 인간관계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한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가끔 입장에 따라 정반대 경우를 보게 된다. 민사집행법에 가압류제도가 있는데, 채권자가 재판을 하는 동안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이다. 채무자들을 만나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압류가 이루어진 것에 격분하고 "이게 무슨 법이냐"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이 경우 조용하게 '모든 국가에 다 있는 법이고, 채무자가 사전에 알게 하면 재산을 빼돌리고 싶어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 그나마 잠잠해진다. 반대로 채권자들은 가압류에 대한 기각이나 현금담보제공명령이 나오면 권리행사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게 된다. 사실 서로 다른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자기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다. 남성과 여성이 성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사실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강간죄 성립자체에 대해 남성과 여성들은 자기 성정체성에 의해 상당히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법이 한 국가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성과 더불어 그 사회의 기본적 가치관에 따라 특정한 계급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향성을 갖게 되는 경우는 어찌 보면 필연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양자의 괴리가 지나치지 않도록 입법·사법·행정·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는 기준에 승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막무가내 자세가 아닌가 한다.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존 기준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로 대한민국 최고세율의 국민연금을 내고 있으면서도 국민연금 폐지청원과 같은 주장을 철부지들의 장난으로 보는 까닭이다. 내게 불리할지라도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따라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