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수 인천도시역사관장


지난 10월17일 코레일은 이용객 편의 증진과 도시 재생사업을 위해 인천역 유휴 부지 1만2284㎡를 개발할 민간 사업자를 내년 1월 초까지 공모한다고 밝혔다. 민간 자본을 유치해 인천역을 민자 복합역사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선정된 사업자는 향후 30년간 역사 운영권을 갖게 된다. 코레일 측에 따르면 여기에는 상업, 업무, 숙박, 문화 등 고밀도 복합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며, 향후 상업, 문화, 교통이 공존하는 지역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코레일이 인천역 유휴 부지를 민자 복합역사로 개발하려는 첫 번째 목적은 인천역 이용객의 편의 증진이다. 그런데 인천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까? 내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개항장을 찾을 때 인천역에 내리곤 하지만, 지금껏 이용에 불편함을 느껴본 적은 없다. 평상시는 물론 출퇴근 때나 사람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도 별 어려움 없이 개찰구를 통과할 정도로 역의 환경은 쾌적하다. 이용객이 많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플랫폼에서 대합실을 거쳐 역 앞 광장까지 이어지는 동선이 매우 쉽고도 단순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역 중에서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고 플랫폼과 대합실을 오갈 수 있는 역은 인천역이 유일하다. 이용객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역의 구조를 지금처럼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코레일이 밝힌 인천역 민자 역사 개발의 또 다른 목적은 낙후된 주변 지역의 도시재생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민자 복합역사는 1989년 3월 한양유통과 철도청이 공동출자하여 탄생한 서울역 민자 역사였다. 당시 서울역은 경부선과 호남선, 경의선의 종착역으로 전국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았고, 역 주변은 사무실과 상점이 밀집해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서울역 민자 역사는 문을 연 지 15년 만에 새로운 역사 건물을 신축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그 후 코레일은 이용객과 유동인구가 많은 수도권의 역들을 속속 민자 복합역사로 탈바꿈시켜 왔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전국의 민자 복합역사는 모두 15개로 이 역들은 복합역사로 개발되기 전, 이미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 민간 자본이 투자할만한 상업적 가치가 높은 지역을 선택해 복합역사로 개발했던 것인데, 그렇게 보자면 인천역 주변의 도시 재생을 위해 민자 복합역사로 개발하겠다는 코레일 측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섣부른 민자 역사 개발은 오히려 이용객의 불편을 초래하고, 도시의 흉물로 남을 수 있다. 1989년 4월 동인천역 민자 역사가 5층 건물에 '인천백화점' 간판을 걸고 우리나라 두 번째 복합역사로 문을 열었다. 당시 동인천역은 경인철도 인천 구간에서 가장 많은 이용객이 드나드는 곳이었고, 역 주변은 지하상가와 시장, 상점이 모여 있어 인천 최대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인천 최초의 복합역사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호기롭게 출발한 인천백화점은 주변 상권의 침체와 외환위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2001년 문을 닫았고, 뒤이어 들어선 쇼핑몰도 채 5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복합역사 건물은 10년 넘게 방치된 끝에 현재 파산 절차를 밟고 있으며, 그러는 동안 이용객은 건물 옆이나 지하도를 통해서 역을 출입해야만 했다. 인천역을 민자 복합역사로 개발하려는 목적이 이용객의 편의증진과 도시 재생을 위해서라면, 그에 앞서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는 동인천역의 활성화 방안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순서이지 않을까?

인천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차역으로 한국 철도사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역사는 애초의 건물이 6·25전쟁 때 소실되어 1960년 새로 지은 것이다. 60년 가까이 된 건물이다 보니 낡고 비좁긴 하지만, 도심 속에 서있는 예스런 자태는 오히려 개항장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역사가 비좁은 대신 넓지는 않지만 소박한 광장이 역을 나서는 사람들을 머금는다. 그 많던 역전 광장이 버스 정류소와 택시 승강장으로 변해갔어도 주말이면 사람들로 들어차는 인천역 광장만큼은 여전히 역전 광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코레일 측에 부탁컨대 역전 광장에 서서 하늘에 걸린 '인천역' 이름표와 자그마한 역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아이들의 즐거움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천을 찾는 외지 손님들에게 멋들어진 현대식 복합역사를 가리키며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차역인 인천역이라고 소개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