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느리게 … 더 많이 만지고 싶다

 

▲ 지난 22일 남동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진나래 작가. 그는 기존의 것을 편집한다. 종이에 새겨진 문구를 오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작가P의 (재)구성'이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자연과 인공,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이다./사진=이아진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손을 뻗었다. 잡은 것 같은데, 다시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 아니, 난 실체를 깨우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게 예술이라면, 진나래(36) 앞에서 난 "모르겠다"라고 답하겠다. 진나래가 행하는 예술 앞에 섰을 때 접한 이미지다.

어느 책에서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고. 진나래의 행위는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르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라고 적었다.

이 소개글로도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진나래를 만난 시간, 허구는 아니지만 허상이 읽혀지는 듯 인상이 짙었고 무궁한 포텐셜이 감지됐다. 분출하지 못하고 농축되어가는 에너지, 다방면에 발산됐지만 길에게 길을 묻는 형상으로 여겨졌다.

힘에 부친 조각, '나'를 탐하는 미술이 아닌, '너'를 찾는 사회학에 매진하는 현재. 진나래에게는 미를 바탕으로 한 예술보다 실체를 규명하는 예술이 어울린다.

지난 22일 남동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진나래 작가. 그는 기존의 것을 편집한다. 종이에 새겨진 문구를 오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작가P의 (재)구성'이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자연과 인공,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이다.

"깎는게 힘에 부친다".
조각을 전공한 미술학도가 뱉기엔 난감한 말이다. 그만큼 절박한 것일터, 그리고 마음의 궤적은 이미 다른 무엇인가를 그려내고 있을 것 같다.

놓치기 싫은 가을과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겨울이 조우한 11월22일. 남동구 간석동 한 아파트 상가에 예술가 진나래 작업실이 있다. 그는 더이상 조각가로 불리우지 않고, 설치를 하거나 행위 예술은 주특기가 아닌 듯 하다.

# 교육은 숨막히니까요

진나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작업실 인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여느 미술가처럼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연필보다는 붓이 편했다.

예술고등학교 진학은 다행히 순조롭게 이뤄졌다. 언니가 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던 터라, 집을 떠나 예고를 진학할 수 있게 됐다. 진나래가 나온 예고는 인천이 아닌 성남에 있다. '한 집에 같은 예고를 다니는 자매, 언니는 피아노를 하고 동생은 미술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재정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아직 우리에게 예술이란 사명은 신통치 않은 분야다. 부모의 걱정과 근심, 그리고 예술을 택한 자에게는 끊임없는 자기애를 통한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선택은 결단이 돼 지금껏 진나래 운명의 '추'가 되어 있다.

진나래가 미술을 택한 결정적 이유는 제도권에 재단되기 싫어서다. 스스로 "숨막히다"는 표현으로 중학교까지 진나래를 옭아맨 교육을 나타냈지만, 미술에 이끌림이 더 컸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진나래는 "이렇게 학교 다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컸다"며 "예고 진학은 쉽지 않았지만 언니가 피아노 전공으로 예고를 다니고 있어 선택에 어려움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래 여학생처럼 만화의 한 장면이 진나래를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당시 인천예고가 개교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낯섦 등이 진나래가 성남의 예고로 진학하는 계기가 됐다.

진나래가 예고를 다닐 때는 대학처럼 학생이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이수하는 형태였다. 이러한 바탕이 다양한 형태의 미(美)를 탐하는 지금의 진나래가 된 듯 하다.

# 서울대생의 끝없는 공부

진나래는 예고를 나와 서울대 조소학과를 갔다. 여러 물질을 깎아 냈다. 형태를 끄집어 내기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 쪼아야 하고, 갈아야 하며, 땜질로 덧붙이는 조각 작업이 진나래는 부담스러웠나 보다. 같은 대학에서 동일한 전공을 했음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렇담 왜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했을까. 이마저도 "다른 학교에 가서 붙을 자신이 없었어요"라는 수줍은 고백이 혼란스럽다.

또 대학원을 마치고, 연세대에서 사회학 석·박사 과정을 진행 중이다. 학부 과정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1년간 외유 경험도 있다.

소위 '스펙' 한번 거창한 만큼 진나래가 품은 이상이 다른 곳에 있을 법한 인상마저 든다. 그렇기에 밑까지 조각을 파헤치며 자신 내면과 닿았고, 사회학을 배우며 타자의 삶과 자신을 이어붙이는 듯 하다.

누가 진나래에게 물었다. 무엇을 향한 예술이냐고. 진나래는 답했다. "진실과 허구 사이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에 관한 것이다"라고, 무슨 뜻일까. 덧붙였다. "진실과 허구를 구분하겠다는 의도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삶은 진실과 허구의 미묘한 겹침 아래에 존재하고 있으며 또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 알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라고.

# 어른이 되어 돌아온 인천

서울삶이 지친 진나래가 안식을 찾고자 인천에 왔다. 부모님이 계신 곳, 나고 자라며 익숙한 공기와 색깔, 그 풍경이 진나래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중이었다. 작가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하고 한계를 넘어섰다.

최근 남동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진 작가는 옷을 겹겹이 껴입고, 털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나타났다. 화려한 무늬가 돋보이는 복장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작가의 작업 역시 끊임없이 변화했다.

인천에서의 첫 활동은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다. ETC는 해석 그대로 일시 합의 기업이다. 진나래 작가를 포함해 이샘, 전보경 작가가 2012년에 함께 만든 프로젝트 팀이다. 이들은 인천 배다리에 있는 스페이스 빔 국제 레지던시에서 만나 팀을 구성해 몇 년간 활동을 지속했다. 진나래 작가는 2015년까지만 활동을 했다.

"당시 인천 지역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인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막상 어른이 돼서는 학교 때문에 서울과 오고가다 보니 인천이 변화하는 모습을 놓치고 말았던 것 같아요."

그는 ETC에서 장소, 사람, 관계, 역사 서사라는 키워드를 토대로 영상, 전시, 퍼포먼스, 출판 등 매체에 국한되지 않고 다채로운 작업을 진행했다. 대인 대행 서비스를 소재로 한 '낙원 가족 서비스'를 포함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소재로 한 '도시신사 A씨의 일일', '시화:시가 되다' 등 리서치를 바탕에 둔 활동들을 해왔다.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재료

진 작가는 예술가로서 좀 더 다양한 것들에 도전을 하기 위해 '함께'가 아닌 '혼자'를 택했다. 그는 진실, 사실로 여겨지는 것들의 허구성에 주목하고 기존 재료를 재편집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컷-앤-페이스트 쓰기(cut-and-paste writing)'의 방식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팀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해오던 작업방식으로, 진 작가는 진실로 여겨지는 것들을 뒤섞어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일에 관심을 가져 왔다.

"기존에 존재하는 텍스트, 이미지, 이야기, 뉴스, 모든 것이 재료가 될 수 있어요. 원래 그렇잖아요, 끊임없이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게 진실인가를 묻는다면 정말 할 말이 없어요. 그저 기존에 본 것과 들은 것을 편집하고 전달할 뿐이죠. 결국 쓰는 것인데, 이러한 편집을 책으로 만들기도 하고 설치나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어요."

최근 그는 책을 만드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며 '간식같은 책'이라는 모토로 '추르추르'라는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꼭 종이책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출판을 고민 중입니다. 게임도 하나의 출판일 수 있어요. 무언가 표현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우리와 결이 맞으면 출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그는 최근 스웨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또 관심이 가는 것이 생겼다고 한다. 바로 우리에게 무척이나 생소한 '바이오 아트'다. 바이오 아트는 최근에 생긴 예술사조로 물질 대신에 생명체를 다루는 생물학과 예술 분야가 서로 협력해 탄생한 새로운 장르다.

"현재 사회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공부가 끝나면 생물학 공부를 시작해 볼까 해요. 아직 한국에서는 많이 시도되고 있지 않지만, 유럽 특히 북유럽에서는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는 여지껏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고, 그것이 항상 성공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계에 부딪혀 좌절도 해봤기 때문에 지금의 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것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더 리서치를 심도 있게 하고 싶은데,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해 노력중이에요."

/이주영·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