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의 지방분권 종합계획발표에 이어 행정안전부는 지난 10월30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방안을 발표하였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행안부의 보도자료를 여과없이 그대로 보도하여 획기적인 자치권 강화가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행안부의 지방자치법 개정방안은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 개정사항이 빠진 외화내빈이라고 총평을 할 수 있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행안부가 지방분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매우 실망스럽다. 핵심적인 개정사항인 자치입법권의 강화는 실종되었다. 행안부는 10개 과제나 제시하면서 획기적인 주민주권의 구현을 내세우지만 정작 주민의 주권이 강화된 것은 거의 없다. 주민주권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그 지방에만 관계된 지방문제는 주민들이 직접 또는 주민 대표기관인 지방의회를 통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이 있어야 한다. 행안부 개정방안에는 지방정책을 주민들이나 그 대표기관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민자결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빈약하다. 그나마 기관구성 다양화는 학계와 시민사회가 오래 전부터 요구해온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지방자치법에 규정하지 않고 별도의 법률로 규정하도록 함으로써 기관구성이 다시 획일화·경직화될 위험이 있다. 기관구성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법에 근거를 두고 각 지방이 지방실정에 맞게 자치헌장으로 이를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안부의 개정방안 중에는 현행의 법률을 개악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법률의 결함으로 인해 주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다.
특히 투표권자의 1/3미만이 투표를 한 경우에는 개표를 하지 못한다는 조항으로 인해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이 최소투표율 미달로 무산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에 필자와 학계에서는 최소투표율을 삭제할 것을 요구해왔다. 실제로 직접민주주의를 일상적인 정치과정으로 활용하고 있는 스위스에서는 최소투표율에 대한 제한 없이 투표자 과반수 찬성으로 주(국)민투표를 가결한다.
행안부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최소투표율을 없애겠다고 했으나, 대신에 주민투표와 주민소환투표가 가결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투표권자의 1/4이상이 찬성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최소투표율 대신에 최소찬성률을 도입하였다. 이에 따르면 주민투표와 주민소환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투표율이 1/3인 경우에 투표자의 과반수찬성으로 가결할 수 있다. 행안부 방안에 의하면 투표자의 75%가 찬성을 해야 가결될 수 있게 된다. 만약 투표율이 25% 미만이면 투표자가 100% 찬성을 해도 안건이 부결되는 기이한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이점에서 최소찬성률 도입은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주민투표와 관련하여 가장 심각한 점은 주민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지방재정이나 공공시설에 관한 사항이 제외되거나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현행 주민투표법에서 주민투표와 주민발안의 구별조차 불분명하여 주민들이 직접 안건을 발의하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어렵고, 지방의회가 결정한 사항이 주민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도 주민투표를 통해 거부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행안부는 아무런 개선방안도 제안하지 않고 있다. 또한 지방문제에 대한 주민자결권의 핵심인 조례제정권 강화에 관한 사항이 빠져 있다. 지방자치법 제22조 단서는 주민의 권리제한이나 의무부과, 벌칙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권리제한 등을 위해서는 국가의 법률이 허용하는 경우에만 가능하고, 자발적인 조례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방은 국가가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자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조항이다. 이에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를 폐지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이 단서규정은 주민과 지방정부를 국가의 하부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독소조항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진정으로 주민주권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법 제22조 단서 조항의 삭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