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 한국정신분석상담학회장·마음담기심리상담센터 대표

 

요즘 '갑질'을 하는 인간들에 대한 폭로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다. 마치 순서표를 받고 기다리는 것처럼 어디서 이 인간들은 다 오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다. 한 명이 사라질 만하면 그때쯤 또 다른 인간이 홀연히 나타난다. 마치 세상이 우리의 분노가 사그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불편해져 소식을 차단하면 또 세상과 차단된 데서 오는 불안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이래저래 불안한 시절이다. 사람들이 불안을 다루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사람들은 불안을 없애려고 하는데 그것은 말이나 행동을 통해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흥분해서 그 인간들에 대해 한바탕 욕을 한다. 아니면 갑질 하는 인간들에 대한 분노의 댓글로 인터넷을 도배하다 그것도 모자라면 처벌해달라는 청원에 동참한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불안과 분노를 댓글과 청원의 탄환에 슬쩍 얹는다. 물론 거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과 분노가 나갈 통로를 발견한 것뿐이다. 댓글이든 청원이든 이런 행동을 하고나면 뭔가 시원하지 않은가. 이것이 소위 카타르시스다. 그러나 얼마 후 불안은 다시 스물 스물 올라온다. 그런 행동을 통해 불안을 발산할 수 있지만 불안의 원인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불안을 가져오는 근본 원인을 다루기보다 말이나 활동으로 불안을 처리해버리는 것이 더 쉽고 덜 고통스럽다.

불안은 전염성이 있고 침투력이 있다. 불안이 심한 사람 옆에 있으면 다른 사람도 불안해진다. 사회든 가정이든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람이 있다. 아이가 친구들과 싸우고 들어오면 아이가 당장 왕따라도 당하는 듯 난리치는 엄마가 있다. 그것은 정말 아이들끼리 벌어지는 사소한 싸움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엄마의 격렬한 불안은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교사를 불안하게 만들고 교장을 불안하게 만든다. 마치 작은 불씨가 산불로 커지듯 사건은 실제보다 증폭된다.

엄마의 강렬한 불안이 가져온 대소동으로 아이는 진짜 왕따가 될 수 있다. 관련된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인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아이를 피하게 될 것이다. 결국 엄마가 가장 막으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엄마의 불안으로 인해 실현되어 버린다. 이런 일은 너무나 빈번하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불안은 사람들을 따라 이동한다. 만약 가족 안에서 불안이 이동한다면 어떨까. 가족원들은 서로에게 짜증내고 화내고 비난하면서 불안이 계속 옮아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아무도 그 불안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다만 한바탕 폭발이 지나가면 다들 우리 가족은 왜 이러는지 절망할지도 모른다. 불안이 이동하면서 가족마다 흡수하는 불안이 다르다. 결국 가장 취약하고 가장 예민하고 감정적인 사람이 불안을 가장 많이 흡수하는데, 흔히 가족 안에서 힘이 없는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점차 한 아이가 그 가족의 불안의 저장소가 된다. 아이가 불안을 흡수한 덕에 다른 가족들의 불안이 사라지면서 다른 가족들은 잘 지낼 수 있다. 다른 가족들이 특정 아이를 불안의 저장소로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은 비교적 잘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안의 저장소인 아이는 문제 행동이나 신체적 질병을 보일 것이다. 가족은 그 아이를 가족의 문제로 여기지만 사실 그 아이가 없다면 다른 가족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찌 보면 아이의 그런 증상은 살려달라는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 수 있다.

불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불안은 예기되는 위험에 대한 표시이고 신호다.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다루지 못하고 압도당할 때 그것은 외상이 된다. 불안으로 인해 우리는 미리 대비하고 대응함으로써 물리적 혹은 심리적 외상을 피할 수 있다. 아니 불안은 우리의 목숨을 구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구별할 수 있느냐다. 불안의 원인을 알려면 그 불안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불안을 자꾸 밖으로 내던지거나 혹은 안으로 무조건 억제하기만 한다면 알 수 없는 불안은 커져만 갈 것이다. 불안의 정체를 모르는 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불안의 저장소로 사용하거나, 혹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불안의 저장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