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인천서예협회 고문·시인


2018년 수학능력시험이 지난 15일 끝났다. 매년 수능 날이면 일기 변동이 심했지만 올해는 날이 춥지 않아 다행이었다. 곧 이들도 세대의 일원으로 바로 청년 시대를 이끌어 갈 미래의 소중한 자산이다. 사회자산 분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동시에 애매한 변수로 작용된다. 주제의 다양성, 그리고 갈등, 청년문화와 기성세대 간 충돌, 경제 등 분명 사회변화를 이끌어 내는 동인(同人)이다. 그러나 사회를 끌고 가는 세대라 해도 그 안에는 이념 또는 계층에 의한 차이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세대 변수의 애매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2018년이 시작되며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 것은 청년 세대다.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 이들의 비판여론이 뜨겁고 그 반응에 정부는 물론 기성세대도 상당히 당황하고 있는 듯싶다.

미국과 일본을 예로 든다면 청년 세대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일본의 '사토리 세대'가 있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 초반 사이에 출생한 젊은이들이 밀레니얼 세대다. 그 특징은 정보통신기술에 익숙하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소통한다는 데 있다.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반면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후반에 출생한 이들을 일본에서는 '사토리 세대'라고 말한다. 이 세대의 특징은 직장과 출세에는 관심 없이 물질적 욕망을 탈·달관한 점이다. '사토리'란 말 그대로 '깨달음'을 잘 이해(?)하는,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청년세대다.
우리 청년세대는 일본보다는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질적 욕망에 달관하기보다는 우리네 아들 딸 세대의 삶이 너무 절박하다. 5포가 모자라 이제는 7포의 세대라고 하지 않던가. 디지털 문화에 의존하며 자기애(愛)와 개인주의가 강하고, 자기 욕망과 생각을 중시하며, 자기방식의 행복을 추구하는 완전 '개인주의' 세대다.

우리 기성인은 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청년세대들의 집합적 세계관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비교 접근과 내재적 접근을 고려하여 관심을 가져야 했지만 실기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 청년들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을 알아간다'는 옛말을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이해한다.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대학생이 되며, 금융위기를 머리에서 발 끝까지 뒤집어쓰고 무한한 취업경쟁이 이들의 삶에 포기란 단어를 심어준다. 그 사회적 배경은 '수저론'을 탄생시키고 '헬조선'을 비롯한 신조어를 만들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사회적 조건이 많은 사람에게 맞춰질 수는 없겠지만, 청년세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치열한 경쟁에서도 공정한 룰을 지키며 누구나 평등하다는 민주의 신념이다. 능력을 겸비한 자기 실력이 발휘되어 지켜지며, 공정한 규칙의 존중이 어떠한 권력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불변의 진리가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 돈이 능력과 권력이라고 했던 '정유라 사건'에 대해 가장 분노한 세대가 그들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공평의 정책이 상실된 뒤 공공기관 채용 비리를 바라보는 그들, 가문의 능력에 따른 차별이라는 피멍, 온전한 삶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의문이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라는 젊은이들의 바보 같은 푸념, 이 시대를 설명하기엔 우리 사회가 한참 고민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청년세대를 관통하는 집합적 심성을 논하자면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의 발전 경향을 보면 개인주의 확산은 비가역적 현상으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가치를 일방적으로 강제해서도 안 되겠지만 할 수도 없다. 문제는 능력(실력)주의에 있다. 그 폐해를 지적한 학자가 많지만, 특권과 권력층의 '귀족주의' 사회에 대립할 수 있는 무기와 방패가 아닌가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능력주의의 가장 어두운 그늘이지만, 청년 개개인의 연마된 능력(실력)이야말로 이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깨부술 수 있는 능력다운 실력이 아닐까. 세습 자본주의 사회의 경향 앞에 청년에게 연마된 능력(실력)마저 없다면, '청춘예찬'은 존재할 수도 없다.

이제 그들의 사회관을 이해하며 가슴으로 들어가 내면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자. 기성세대의 충고나 정부 정책의 결정, 그리고 사회의 가치판단이 사실 판단을 앞지를 수 없다는 명백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들에게 일러주며 말이다.